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글로벌IB를 향한 큰걸음 디뎌
5년후 자기자본 10조원․ROE<세전자기자본이익률> 10% 달성 목표

미래에셋증권이 KB금융지주,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KDB대우증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대우증권을 품에 안게 되면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1위 증권사는 물론,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전은 흥미진진한 한 편의 반전 드라마였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삶 또한 드라마틱했다.
글 | 유성호 기자 

 

   박현주 회장 얼마 배팅했나
2조4000억원 써내 한투·KB 따돌려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로 반전드라마 써

KDB대우증권이 미래에셋금융그룹 품에 안기게 됐다.

KDB대우증권이 미래에셋금융그룹 품에 안기게 됐다.
당초 KB금융지주가 유력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미래에셋증권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베팅 금액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은 2조4000억원대의 최고가를 써내 2조2000억원대를 써낸 한국투자증권, 2조1000억원대를 써낸 KB금융지주를 따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인수 후 시너지효과와 적격성 등 가격 외적인 요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가격 차이가 상당했던 탓에 무게추가 기울어졌다는 평가다.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두고 시장에서는 또 한번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회장의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반전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7년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박 회장의 도전이 자본시장 패러다임을 새롭게 쓰는 한편 한국 금융산업을 한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펀드 대통령’으로 불리는 박 회장은 한국 금융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전인미답의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다. 
박 회장이 자본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던 20대 초반이다.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에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고, 대학원생이던 27살에 자문회사 형태인 내외증권연구소를 만든 게 지금의 미래에셋그룹을 일구는 초석이 됐다.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박 회장은 또 한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박 회장은 항상 증권사의 자산이 10조원은 넘어야 제대로 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의 오랜 꿈이자 목표에 한발 더 가가서게 됐다. 

“오랜 꿈이자 목표에 다가서” 
그는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글로벌 IB 도약이라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자기자본 4조3256억원(2015년 9월 말 기준)인 KDB대우증권을 인수하면 미래에셋증권의 자기자본(3조5000억원)은 자기자본이 7조8000억원 대가 된다. 
2위 NH투자증권(4조4900억원)과 삼성증권(3조6200억원)을 압도하는 규모로 독보적 1위다. 
하지만 일본의 노무라증권(자기자본 28조원), 다이와증권(14조원) 등에 비하면 아직 중소형사 수준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아시아 대형 투자은행으로의 변모를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증권가의 맏형으로서 버팀목이 돼 온 대우증권은 미래에셋증권 품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대우증권의 풍부한 투자은행(IB) 경험과 미래에셋증권의 넓은 해외 네트워크가 맞물려 글로벌 대형 IB 탄생의 초석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박현주 회장은 어떤 인물인가?
33살에 증권사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
97년 자본금 100억원 미래에셋캐피탈 창업

박현주 회장이 자본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던 20대 초반이다. 
박 회장은 고려대 2학년 때 한 수업 중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에 투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생 때부터 증권 1번지였던 명동 증권객장 문턱을 넘나들며 투자의 묘미를 알아갔다. 
박 회장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박 회장은 인생 스승을 말할 때면 어머니를 빼 놓지 않는다. 어머니는 서울서 대학생활을 하는 박 회장에게 1년에 한번 생활비를 부쳤다고 한다. 
계획적으로 돈을 관리하고 쓰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였다. 
공부 습관은 부친에게서 배웠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농한기에는 공부로 소일을 했다. 
박 회장에게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줬다. 
위인전을 많이 읽혔고 책 읽는 모습을 많이 칭찬했다. 
부친은 박 회장이 고등학교 합격자 발표 날 돌아가셨다. 
제법 방황도 많았던 그에게 어머니는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도 괜찮다. 농사 짓는다고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라며 직업보다는 ‘성실함’을 가르쳤다. 

루머·정보 벗어나 분석기법 개발 투자 
20대 초반부터 증권 객장을 제집 드나들 듯 다녔던 그는 증권투자로 번 돈과 고객에게 받은 자문료로 서울 회현동 코리아헤럴드 빌딩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었다. 
이때가 27세 되던 해로 대학원생 신분이었다. 자문회사 형태인 내외증권연구소는 지금의 미래에셋그룹을 일구는 초석이 됐다. 
박 회장은 루머나 정보로 주식을 투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나름의 분석기법을 통해 투자했고 증권가에서 눈여겨 볼 정도로 수익을 냈다. 
증권가에서 27세 청년 박현주를 ‘재미난 친구’라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박 회장은 일본의 증권 시장을 연구하면서 우리 금융산업 역시 일본과 같은 궤도로 발전할 것을 예측했다. 그러면서 ‘미래자산 운용’에 대한 꿈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1986년 그는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업계에서 이미 높은 몸값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던 차였다. 
그런 그가 굳이 말단 직원으로 동양증권을 택한 것은 당신 증권가 최고 스타였던 이승배 동양증권 상무 밑에서 일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 머릿속에는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밑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이 상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지점 조직을 기업분석팀, 법인영업팀, 관리팀, 일선 영업팀으로 구축했다. 
기업탐방과 분석을 통해 기업 가치를 들여다보고 이를 토대로 자료를 만들어 영업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상무는 1년 후 독립을 위해 동양증권을 그만뒀다. 박 회장 역시 동양증권을 나와 1987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9년 그는 33살에 을지로 중앙지점으로 발령났다.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달면서 기회를 잡지만 증시는 위기였다. 코스피가 1000선을 돌파한 후 내리막을 걸었고 증권가에서는 1970년대 건설주 파동 이후 최대 증시폭락이라며 당황했다. 
당시 을지로 중앙지점 지점훈(訓)이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다’였다. 
박 회장은 ‘바람개비’를 돌리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밤늦게 야근을 했다. 
최연소란 타이틀은 그만큼 업무에 대한 가중이지 결코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이 야근을 하던 어느날 어머니 전화가 걸려왔다. 
“현주야, 너무 성공하려고 하지 마람. 성실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 회장은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조급함을 떠올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성실함의 가치를 다시금 깨우쳤다고 회고했다. 이후 박 회장은 여유로움을 가지고 지점을 이끌면서 성과를 높일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젊은 직원을 늘리고 기업분석을 강화했다. 
그 결과 중앙지점은 전국 지점 중 약정고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때 박 회장은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수석부회장(당시 대리), 구재상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출신, 당시 대리) 등을 만났다. 
이들은 미래에셋 창업 주축 멤버로 이후 성장까지 동고동락했다.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 창업 
‘한 분야에서 10년이상 정진해야 한다’는 인생철학에 따라 외환위기 6개월 전인 1997년 6월 자본금 100억원으로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했다. 이듬해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세웠다. 
업계에 발을 디딘지 13년만에 자신이 꿈꾸던 자산운용업에 진출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꿈꾸며 준비하던 터에 그는 창업하자마자 큰일을 벌인다. 
1998년 12월 내놓은 국내 첫 폐쇄형 뮤추얼 펀드 ‘박현주 1호’를 내놨다. 
당시 외환위기 이후라 투자신탁회사들의 신뢰도는 바닥이었다. 
박 회장은 ‘투자자가 곧 주주가 되는 구조로 이뤄지기 때문에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고객들의 마음을 산 것이다. 그러나 증권가는 ‘박현주 1호’가 가입한 뒤 1년 동안 돈을 찾을 수 없는 폐쇄형 뮤추얼 펀드라는 점에서 단기투자에 익숙한 고객의 니즈에 벗어나 성공이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박 회장은 특유의 ‘소수의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본다’는 투자 철학을 앞세워 펀드 판매를 밀어부쳤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박현주 1호’는 2시간 30분만에 500억원 한도를 모두 판매하는 큰 성공을 거두면서 박현주와 미래에셋이란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렸다. 
미래에셋은 적립식 펀드 활성화를 통한 펀드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 국내 시장은 은행에 예적금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은행은 돈이 모이는 곳이고 투자상품 팔기에도 효과적인 채널이었지만 대부분 자산운용사들이 계열사를 통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은해 판매 채널을 확보하고 2003년 국내 첫 적립식 펀드를 출시해 성공했다. 
이후 은행예금 위주의 저축문화는 투자문화로 변화했다. 
박 회장은 이듬해인 1999년 고객에게 금융솔루션을 제공하는 금융그룹을 만들기 위해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한데 이어 2005년 미래에셋생명을 출범시켰다. 
또 업계 최초로 해외에 진출해 금융상품을 수출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하며 급성장했다. 

‘인사이트 펀드’ 실패로 교훈 얻어 
‘인사이트 펀드’는 박 회장에 기쁨과 아픔을 동시에 안겨줬다.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2007년 10월애 내놓은 ‘인사이트 펀드’는 출시 초반 박 회장의 브랜드 파워에 시중자금이 날개달린 듯 팔렸지만 ‘중국 몰빵 펀드’ 논란 속에 수익률이 반 토막 나면서 명성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인사이트 펀드는 한달만에 설정액 4조원을 돌파하면서 ‘직진’만 하다가 6개월 후 리먼브라더스 파산 여파로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그동안 실패를 모르고 고공행진을 했던 ‘박현주’란 이름에 큰 흠집을 낸 것이다. 
‘박현주 신화’는 하루아침에 ‘박현주 리스크’가 됐다. 
인사이트 펀드는 1인 중심의 지배구조가 투자전문그룹 특성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1인 지배구조에서 분권화된 구조가 필요하다는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국내시장 좁다 해외로! 해외로!” 
박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2011년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앞세워 캐나다 상장지수펀드(ELF) 전문 운용사인 호라이즌 베타프로를 인수했다. 
박 회장은 “북미와 호주의 안정적인 시장에 노출도를 높이고 현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번 인수를 진행했다”며 “미래에셋운용그룹은 국내와 해외법인의 동반 성장을 통해 5년내 글로벌 운용자산규모를 100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며 이가운데 해외운용 규모가 절반인 5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 글로벌 전략에 있어서 베타프로 인수는 큰 의미가 있다. 
앞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전액 출자를 통해 홍콩, 인도, 미국, 브라질 등지의 자본시장에 현지법인을 만들어 진출했다. 그러나 현지 합작사 없이 자산운용업을 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은 현지법인과 인수합병을 적절하게 병행하는 것으로 전략을 보완했다. 
박 회장의 또 하나의 투자 지론은 “국내 자산에만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객들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외 분산투자가 필수적”이라며 장기투자와 더불어 투자확대와 분산투자를 강조했다. 미래에셋은 2003년 홍콩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글로벌 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인도, 영국, 미국, 브라질, 대만 시장을 공략했다. 
미래에셋은 ‘선 운용 후 증권’ 전략을 글로벌 시장에서 펼쳤다. 운용사가 먼저 진출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브랜드가 확대되면 증권사가 후속 진출해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전략에는 지속 성장률, 높은 설비투자. 부존자원, 좋은 환경 등 4가지 요소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자서전적 경영서 ‘돈이 꽃보다 아름답다’를 보면 이런 전략이 잘 드러나 있다. 
‘중국과 인도는 성장률이 높은 나라다. 돈은 성장하는 곳에 모이기 마련이고, 돈이 유입되면 투자가 늘고 자본시장도 그에 맞게 성장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간기적인 위기와 도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추세가 성장과정에 있다면 사장은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를 토대로 박 회장은 중국과 같은 이머징 마켓을 공략했고 국내 사모펀드로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는 첫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미래에셋PEF는 2011년 골프브랜드 세계 1위업체인 아큐시네트 인수를 주도했다. 
업계에서는 대한민국 투자지도를 바꿀 대형사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일문일답
“한국경제 역동성 회복과 글로벌 자산배분을 통한 평안한 노후준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 노력”

구랍 28일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문일답을 하고 있는 박현주 회장.

구랍 28일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문일답을 하고 있는 박현주 회장.
박현주 회장은 구랍 24일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 “글로벌IB(투자은행)로 나아가려고 하는 미래에셋의 진정성을 알아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뜻 깊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자본시장 이노베이터로 성장해온 미래에셋과 업계 최고인 대우증권의 장점을 잘 결합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투자은행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며 “저성장∙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 투자 확대가 중요하며 향후 투자활성화를 통해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과 글로벌자산배분을 통한 국민의 평안한 노후준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에셋증권은 본계약 체결과 대우증권 인수 합병까지 절차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계획”이라며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원, 세전이익 1조원, 세전 자기자본이익률(ROE) 10%를 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수 발표 후 3일간 ‘완전 방전’된 삶을 살았다는 그는 28일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보다 자세한 입장을 밝혔다. 기자들 앞에 선 것은 2007년 3월 이후 8년만이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래에셋그룹의 자기자본을 3년 내 10조원까지 만들겠다고 말했다”라며 “그 규모는 대우증권 M&A를 염두에 두고 말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년사 때 말한 자본금 10조원을 넘기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확장시켜야 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듯”이라며 고민을 드러냈다. 
박 회장은 “증권업은 자기자본을 늘려야 한다”라며 “자본 규모가 커지게 되면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리스크 관리를 꼽았다. 
투자에 있어 반드시 감내해야 할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자기자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이번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자기자본 8조원을 달성했지만 아직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다”라며 “자기자본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증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구조조정 관련 우려가 많다. 
한국 금융회사가 합병하면 구조조정을 많이 했지만 우리는 그 부분은 벤치마크 안하려고 한다. 두 회사를 통합하면 인적자산이 210조원, 자기자본이 7~8조원이다. 자산규모로 300조원이 넘어가는 은행이 800개 점포를 가지고 있는데 자산규모로 보면 점포가 400개는 넘어도 된다. 점포 수를 250개는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 대우증권은 지금까지 잘한 기업이다. 이런 기업에 상처를 줄 수 없다. 또 한국증권 산업이 너무 뒤쳐져있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쳐지면 안정된 자기자본 바탕으로 과거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걸로 확신한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 된다. 과거 그림속에 있으니 미래가 안보인다. 

△합병 이후 직원들의 계열사 전출 문제는. 
대우증권 인수를 준비하면서 인력을 대단히 조심스럽게 뽑았다. 운용사 50~100여명 뽑아야 한다. 근데 이 과정에서 채용을 안 하고 있었다. 워낙 대우증권 인력들이 우수하니 기회를 주자는 차원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보내면서 이걸 구조조정이라 생각은 안한다. 원하는 사람한테 손들라고 하면 된다. 미래에셋증권 안에서도 운용사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인생 크게 보면 많은 경험 해 보는 것도 본인에게 좋다. 
△초대형 증권사 탄생으로 금융시장에도 삼성같은 글로벌 회사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데 구체적인 목표가 있나. 
삼성 같은 회사는 불가능한 상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재무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야한다. 시간이 가면서 좀 더 큰 꿈을 가지고 증명하겠다. 

△앞으로 사명은 어떻게 바꿀 계획인가. 
대우증권이 갖는 한국 증권사의 역사성을 생각하면 대우증권 이름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미래에셋대우증권이 좋을 것 같다. 대우증권 임원들과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고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산은자산운용은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산은자산운용은 한국 대표적 헤지펀드회사로 회사의 틀을 바꿔보려고 한다. 채권을 잘하는 강점을 유지하면서 중위험 포트를 제공하는 회사로 만들 것이다. 

△대우증권 합병 이후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이 있나. 
금융지주 회사를 가느냐 하는 문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주사를 만들면 관리하기는 좋지만 야성을 잃을 수 있다. 미래에셋은 투자전문 그룹이 됐으면 좋겠다. 

△미래에셋은 그동안 자산운용 중심이었는데 그룹의 중심이 증권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평가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회사는 아모레퍼시픽이나 한미약품 같은 전문화된 업체다. 이런 전문회사가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회사들이 이노베이터이고 한국이 필요한 것은 이노베이터인데 생각보다 평가를 덜 받고 있다. 
어차피 금융회사는 자기자본이 큰 회사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니 증권이 끌고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산운용도 상당한 독립성 유지한 채 가고 싶다. 
보험사도 있지만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성격이 많이 다르다. 서로 이야기는 하되 가능한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이다. 

△23개 미래에셋 계열사에 등기임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 있다. 자산운용사 하면 다른 분야 못하도록 돼 있다. 현실적으로 경영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일부는 연봉을 많이 받으니 공개하기 꺼려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 연봉은 9억원 정도다. 회장으로서, 창업자로서 회사경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세 가지 회사에 다 들어갈 수 없다. 연봉공개 안 하기 위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소회를 밝혀달라. 
회사를 창업하고 나서 좋은 회사를 만들 것이라는 꿈은 있었지만, 대우증권을 인수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축복이다. 사회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날은 감동이었다. 이후 3일 동안 완전 방전됐다.


   대우증권 인수 막전막후
연막작전·엄살전략에 이은 과감한 배팅
고도의 심리전으로 일궈낸 인수전 승리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2007년 내놓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다. 
그 아름다운 꽃을 세상이 놀랄 정도로 아낌없이 던져 또 한번 한국 증권사의 새 역사를 썼다. 
미래에셋증권이 KB금융지주,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KDB대우증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대우증권을 품에 안게 되면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1위 증권사는 물론,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미래 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전 승리는 한 편의 반전 드라마였다. 
당초 KB금융지주가 유력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2조4000억원이라는 최고가를 써낸 미래에셋증권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인수 후 시너지효과와 적격성 등 가격 외적인 요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가격 차이가 상당했던 탓에 무게추가 기울어졌다는 평가다.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두고 시장에서는 또 한번 박 회장의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반전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인수 과정에서 연막작전과 엄살전략, 그리고 선택과 집중에 이은 과감한 배팅이라는 승부사 박 회장의 고도의 심리전이 숨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1월 17일 피인수기업인 대우증권의 경영진 설명회에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영진 설명회 불참 등 ‘허슬플레이’ 
이를 두고 미래에셋의 인수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미래에셋증권 홍보실에서는 “합리적인 수준 이상의 가격을 적어내 무리하게 인수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를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흘렸다. 
결과적으로 치밀한 연막작전이고 엄살전략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주도면밀하게 인수전을 준비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8월 돌연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포기했다.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경쟁자였던 한국투자증권이 인터넷전문은행과 대우증권 인수를 동시에 추진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우증권 인수에 올인한 미래에셋증권의 인수 의지와 자금동원력이 높게 평가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인터넷은행에 사활을 거는 것처럼 하다가 중간에 빠진 것도 이미 시나리오에 있었던 연막작전 아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지난달에는 956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인수 ‘실탄’을 마련했다. 
자기자본 2조6000억원 정도로 업계 5~6위권이던 미래에셋증권은 유상증자 이후 자기자본이 3조5000억원대로 늘어 업계 4위로 부상했다. 
이런 가운데 본 입찰 전 시장에서는 2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될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실제 한국투자증권과 KB금융지주의 배팅 금액은 그 정도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치 못한 미래에셋증권의 깜짝 배팅이 있었다. 
결국 박 회장은 자금여력이 나은 KB금융지주가 안심할 수 있도록 연막작전을 펼친 뒤 깜작 배팅에 나서 반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셈이다.


   대우증권 매각과 증권업계 지각변동
모태 동양 업력 45년 업계 산증인
99년 워크아웃 이후 KDB산업은행서 관리

산업은행이 대우증권-산은자산운용 패키지 매각 우선협상자로 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산은 이대현 정책기획부문장이 구랍 24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산업은행이 대우증권-산은자산운용 패키지 매각 우선협상자로 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산은 이대현 정책기획부문장이 구랍 24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
미래에셋에 새 둥지를 틀게 될 대우증권은 대한민국 증권가의 산 증인이다. 
그간 수많은 위기와 고난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대한민국 증권가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1970년 동양증권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이후 1973년 대우실업(대우그룹)에 계열 편입됐고, 이후 10년 만인 1983년에 와서 비로소 현재의 대우증권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위기는 설립 30년이 채 안 된 시점에 터졌다. 
1997년 외환위기로 촉발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이어 벌어진 1999년 모그룹 대우그룹의 부도로 계열 분리되는 상황을 맞았다. 
대우그룹 계열 분리 후 자금난에 허덕이던 대우증권은 결국 1999년 워크아웃을 선언했고 2000년 새 주인으로 나선 국책은행 KDB산업은행의 관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선진화로 산은이 민영화 대상에 올라 산은지주의 자회사로 운명을 같이 하는 듯했으나 산은 민영화가 물거품이 되며 대우증권 매각도 보류됐다. 
그러다 2013년에 또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한 증시 침체로 인한 매매수수료 수입 급감과 채권 투자 손실이 커지며 지난 2005년 1500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한 후 8년 만에 다시 적자 전환했다. 
이런 모진 풍파를 이겨내 온 대우증권이 설립 45년 만에 미래에셋금융그룹에 몸을 맡기게 됐다. 

1년 후 사명 ‘미래에셋대우증권’ 유력 
그렇지만 대우증권이란 이름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내년 1년간은 기존 사명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유예기간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증권이 갖는 한국 증권사의 역사성을 생각하면 대우증권 이름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는 미래에셋대우증권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해 1년 뒤 병기 가능성을 높였다. 
미래에셋 품에 안긴 대우증권은 IB 역량 확대에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은 연금과 자산관리에 특화돼 있는 반면, 대우증권은 오프라인 브로커리지와 국내외 IB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서다. 
미래에셋은 다년간의 해외 투자 경험을 통해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 대우증권의 최대 강점인 IB에 접목시킨다면 글로벌IB로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다. 
미래에셋도 이 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은 해외 네트워크와 해외 투자 DNA가 바탕이 돼 있기에 이번 대우증권 인수로 글로벌 대형IB로서 세계적인 IB들과 당당히 겨뤄나갈 수 있게 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번 매각과 관련 증권업계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7조8000억원대의 초대형 증권사가 탄생하게 되면서 NH투자증권(4조6044억원)과 큰 격차로 명실상부한 1위가 되는 것이다. 해외 IB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국내 대형증권사들의 몸집 확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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