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협력 제안에 호응 않는 북한…수용 여부가 최대 관건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4.27.

남북 관계 회복은 문재인 대통령의 향후 2년의 임기 동안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로 평가된다. 취임 2년 차에 한반도 평화의 변곡점을 만들어 냈듯, 남은 2년은 남북 관계의 빗장을 푸는 '회복의 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회복의 중심에는 보건·방역 분야 협력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 극복이라는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협력의 접점을 넓히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남북 간 방역 협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준비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 2주년이던 지난 27일 주재한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코로나19의 위기가 남북 협력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며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남북 협력의 길을 찾아 나서겠다"고 말했다.

남북 모두가 재앙처럼 닥친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그 지점에서부터 현실적인 협력의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올해 신년사에서부터 출발한 남북 협력의 의지가 3·1절 기념사를 거쳐 4·27 판문점 선언 2주년 메시지에서 보다 선명해졌다.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 합의 이행에 주저했던 시간에 대한 성찰을 주로 담았다면, 3·1절 기념사에선 코로나19라는 남북 간 협력의 명분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4·27 판문점 선언 2주년 메시지에서는 남북 방역 협력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준비 발판으로 삼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지난 한 해 지켜지지 못한 합의에 대해 되돌아보고, 기대에 못미친 이유를 되짚어보겠다"(1월7일 신년사), "북한과도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바란다"(3·1절 101주년 기념사), "남북이 함께 코로나 극복과 판문점 선언 이행에 속도를 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기를 기대한다"(4월27일 수보회의) 등 남북 협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점차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왔다.

오는 10일 예정된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는 남북 방역 협력에 대한 보다 완성된 형태의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신(新) 베를린 선언'과 '신(新) 한반도 체제 구상' 등 거시 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준비 과정에서 남북 방역 협력의 효용성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정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남은 2년 속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겹쳤다"면서 "그런 부분들을 전부 다 총괄해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와 각오, 계획을 총체적으로 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포스트 코로나'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과의 방역 협력과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성공적 방역 모델로 세계적 호평을 받고 있는 기회를 남북 협력으로 잘 살려나간다면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주도권을 갖게될 것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이 4·19 혁명 기념사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상황을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세계인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통합된 국민의 힘으로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일상,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준비하겠다"고 밝힌 것에서 이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를 통해 '코로나19 공동대응과 방역 협력 필요성'이라는 어젠다를 주도한 데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준비에 자신감을 얻은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진단키트의 조기 개발과 방역 성공이 기반이 돼 각국 정상들로부터 협력을 요청하는 '러브 콜'이 쇄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통화를 시작으로 31차례 정상통화를 했다. 주요20개국(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특별 화상 정상회의를 성사시킨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러한 정상통화 때마다 국제사회와의 연대·협력을 강조한 것에는 장기적으로 북한과의 협력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 체온계, 인공호흡기, 실시간 유전자증폭 검사(RT-PCR) 장비 등 코로나19와 관련된 제품을 인도적 지원 차원으로 대북제재 면제 대상으로 승인했다.

비록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확진자가 없다고 발표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방역 물품이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선이다. 유엔 대북제재위가 이례적으로 제재 면제를 시속히 승인한 것은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북한이 호응 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4일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 극복을 응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친서를 보내면서 남북 협력 제안 수용에 대한 기대감을 남기면서도,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 제안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이라 하더라도 1년 이상 냉랭했던 남북 관계를 뒤로 하고 손을 잡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친서 교환을 통해 (남북) 정상간의 신뢰는 유지되고 있으나 실무적인 차원에서 (남북 협력 추진의) 우선 순위 차이는 존재하고 있다"며 "그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가 통일부의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통일부 차원에서는 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남북 접경지역 협력 등 5가지 사업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준비하고 있다. 동해북부선(강릉∼고성 제진) 추진 기공식에 이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중단된 판문점 견학의 재개를 타진하고 있다.

관계 부처 차원에서의 남북협력 사업 추진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남북 정상간 '톱-다운' 방식의 대화 채널이 아니고서는 추진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지난 4·27 판문점 선언 2주년 기념 민주평통 특별대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 2주년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사이에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공중보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5월 초부터 6월 국회 개원 전까지는 북한이 화답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우리의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경험만을 가지고 북한에 우리의 협력 의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성급한 접근은 오히려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한 전체적인 판 자체를 그르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내부적으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돼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한 공개적으로 대외적인 지원을 요구하거나 협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국제 공동대응의 틀 속으로 북한 참가를 유도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특정 국가가 다른 특정 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원하거나 지원받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가 동등한 입장과 자격으로 국제공조시스템에 참여해 함께 방역하고 공동으로 연구해 나간다면 제제의 틀 속에 갇힌 북한의 참여와 변화의 틈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가운데 보건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근 언급하고 있는 북한과의 백신 및 신약 개발 필요성이 남북 협력의 문을 여는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북한에 서식 중인 다양한 야생화로부터 코로나19 치료 성분의 발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거부하고 있는 직접적인 지원의 모양새를 취하지 않으면서 남북이 대등한 입장에서의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접점은 마련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묻어 있다.

신약 개발 자체가 조기 성공을 담보하긴 어려워도 남북 간 협력 사업을 유지할 수 있고, 성공시에는 경제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북한에 큰 힘이 되면서 문 대통령의 평화 경제 구상 실현 등 남북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김연철 장관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남북이 협력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의견을 많이 제시한다"면서 "특히 천연물 신약 개발의 경우 북한의 야생화가 많이 분포하므로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예전에 야생 식물에 대한 남북간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신약의 천연 재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며 "실태 조사부터 시작해 공동 연구까지 신약 공동 개발에도 여러 단계를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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