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례와 새벽길 건널목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해본다. 30대 중반쯤 된 여인네가 유모차에 젖먹이를 태우고 또 남자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전철에 올라탔다. 서있는 남자 어린애는 전철이 달리니까 몸이 흔들리자 철제 기둥을 양손으로 잡고 힘들게 서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다 못해 경로석에 앉아있던 내가 그 어린애를 불러서 힘들지, 여기 앉아라” 하면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면서 “너 몇 살?” 물었더니 5살이라고 말하고 손가락을 펴보였다. 그때 애 엄마가 어린애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 혼자 서서 갈 수 있지, 그렇지?” 하고 물으니까 “응, 엄마” 애가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애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애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그러니 어르신 그냥 앉으세요” 
앞의 사례가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음 정차역에서 어느 중년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전철에 올라탔다. 전철에 오르자마자 그 중년여인은 연신 이렇게 말했다. 
“야, 빨리 앉을 자리를 찾아봐야지” 
그러면서 경로석은 물론 옆칸까지 흘낏 보면서 연신 자리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전철안을 다니는 것이었다. 내가 그 남자 아이를 불러서 “너 몇 살이냐, 학교 다니지?”하고 물으니 그 남자 아이는 내게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라고 답했다. 그 여인은 연신 어린애가 서서 가는게 걱정이라고 말하면서 다음 역에서 누군가가 내리는지 고개와 눈을 부지런히 움직이더니 경로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니까 애를 불러재낀다. 
“얘, 빨리 와서 이리 앉아” 
50년 가까운 습관이 되어서 새벽 5시반 정도에 아침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건널목에서 여자 어린애를 대동하고 30대 중반정도된 애엄마가 대로도 아니고 아파트에서 나오는 편도 1차선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그때가 잘 되어야 6시반 정도되었을 것 같다. 평소에 나도 그 시간대에는 아파트에서 차가 나오거나 아파트로 들어가는 차가 거의 없어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곤 했다. 아침 출근 준비하는데 바쁘다는 생각에…. 그런데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고 달리는 자동차가 없는데도 애 엄마는 진득하게 애를 데리고 건너는 신호를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애가 기다림에 지겨워서 건너려고 움찍하니까 손을 꼭 잡고 신호등을 설명하며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여자 애에게 “몇살이냐”하고 물어보니 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예요”라고 답한다. 내가 “참, 젊은 애엄마 존경합니다”라고 칭찬해주고 어린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청년실업 미스매치는 가정교육에서 문제 
요즈음 청년실업이 사회적 화두다. 온 나라가 청년실업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청년실업의 원인이 무엇인가? 정부는 걸핏하면 청년실업의 해법으로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산업구조나 눈부시게 빠른 기술의 발전 진도로 보아 ‘고임금에 복지수준이 높고 일하기 편한 좋은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나겠는가….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높은 대학진학율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고학력 청년실업이 걱정이고 그 중요한 원인으로 고용의 미스매치를 걱정하고 있다. 그 미스매치의 근저에는 바로 부모들의 잘못된 자녀 교육관련 의식과 행태가 있다고 본다. 대학졸업했으니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창피하다며 ‘캥거루 자녀’를 만들고, 더 심한 것은 성년 자녀들 대학 전공을 정하는데 엄마들이 나서는 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세태이니…. 우리나라에 참 많은 ‘자격’이 있다. 국가자격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민간자격까지 셈하면 정말 자격의 수를 알기 어렵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자격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앞의 사례를 보면서 고민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느 자격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자격은 바로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길러주는 어른된 ‘자격’이 아닐까…. 요즈음 걸핏하면 우리 옛 어른들의 의식과 행동을 비난한다. ‘고루하다’느니 ‘비인간적이다’라느니 하면서, 또 어린애는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애들을 영원한 미숙아로 만들어 놓고 있다. 

대학생도 어린애 취급 영원한 미숙아 만드는게 문제 
성인이 된 대학생도 어린애인가? 그리고 자기가 낳은 자식은 성년이 되어서도 아니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죽을 때까지 사후관리해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엄마, 과연 그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것인가? 
기업에 취직해도 일이 어렵다느니 상사들의 핀잔이 듣기 싫다느니 하면서 취직후 2, 3년내에 70%가 직장을 이탈하는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로터리나 청년회의소 등 중요한 사회적 활동클럽들이 내거는 구호중에 많은 것이 ‘청년이 다음 세대의 주인’이라는 직설적 내지 간접적 표현이다. 
지금 우리 산업사회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부문이 모두 ‘초경쟁’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런 초경쟁의 시대에 과연 청년들이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남게 해줄 수 있는 주인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걱정이다. 피치못해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군대에서 힘들다고 탈영하는 병사가 많아지니 지휘관이 어린 병사를 상전 모시듯 한다고 한다. 탈영병에 대한 무조건적 책임이 무서워서라고 하니 그 역시 엄마의 자격이 없는 것과 같은 행태가 아닌가. 그런 체제를 만들어 놓고 있는 저 위쪽 리더들의 리더십 자격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기업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제대로 키워야 하는데, 과연 그들을 어떻게 리드해서 초경쟁을 뚫고 나아가는 기업의 주인공으로 만들것인지 참 걱정이다. 이것은 채용 이후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기업들이 채용에서부터 제대로 성숙된 인간을 선발하는 것이 더 근원적 해결책이라고 본다. 업무능력이니 소위 학업실력이니 하는 것보다는 최소한 2,30년 직장에서 일할 청년이 스스로 자신을 가늠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을 최우선해야 한다. 자기 자신 하나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거나 사회적 질서와 기준을 지키며 살아나갈 자세가 되어있지 못하다면 과연 그 청년들이 오랜 직장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는가… 
지식을 써먹고 버릴 직장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채용이 지식이나 경력을 바탕으로 삼기보다 더 근원적으로 진실로 하나의 제대로 된 성인으로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러한 채용 트랜드가 사회에 널리 퍼지면 부모들이 제대로 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진실로 자격있는 부모로서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아가 그러한 선발기준에 합당한 청년을 채용했다면 적어도 초경쟁시대를 리드하는 기업이라면 그 청년들의 사회적 엄마로서 그들을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인적자본으로 소중히 키워나가고 그들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데 투자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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