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튜어드십 코드와 노사정의 관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와 직원연대지부 등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국민연금의 조양호회장 일가에 대한 주주권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9.01.16.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스튜어드십 코드로 불리는 기업집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반 사람에게는 생소한 제도지만 국민의 노후생활과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변화다.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노동계의 경영참여도 확대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이유나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나라가 많지 않고 역사도 짧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배경과 논리, 그리고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본 문제점에 대해 [김태기의 정책진단]에서 짚어봤다./편집자 주

1. 스튜어드십 코드와 노사정의 관계

<스튜어드십 코드로 불리는 기업 집사제도>

기업 수난시대. 정부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고 추켜세우면서 새로운 짐을 지우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는 좋겠지만 근로자나 일반 국민에게 손해를 끼칠지 모르는 그런 짐이다.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생소한 용어의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스튜어드십은 쉽게 설명하자면 돈 많은 집의 재산을 집사가 관리해주는 제도, 그게 기업이라면 경영에 관여하는 기업 집사제도라고 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 집사가 지켜야할 준칙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신음하는 기업이 이제는 비우호적인 기업 집사의 비위까지 맞추어야 할 신세가 될 것 같다.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바깥에서는 규제로 안에서는 기업 집사제도로 기업이 사업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발목을 잡게 생겼다.

정부는 외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고 하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도입의 이유와 환경은 물론 도입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무시한다. 뿐만 아니라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일부 외국에서도 이 제도는 여전히 실험적인 단계에 있다는 점도 외면한다. 이를 도입한 외국은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 정부는 단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준다. 도입 여부는 투자자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이유도 기업이 환경이나 인권 등 소홀하기 쉬운 문제를 기업이 스스로 챙기도록 만들자는데 있다. 한국은 이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가 국민의 노후생활 자금인 국민연금을 이용해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은 물론 국민연금도 위험에 빠뜨려 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이 맞나?>

한국은 노후대비가 부족한 나라다.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고령화는 빈곤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기에 국민연금은 더욱 국민의 노후생활을 책임지는데 충실해야한다. 미래를 위해 국민이 낸 돈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안정성과 수익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규모인데다 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 국민연금이 웬만한 대기업에는 다 투자하고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는 반 강제적인 제도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스튜어드십은 정부가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대주주가 되면 정부는 사실상 민간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자본주의 질서까지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자본과 노동이 모두 정부의 통제 하에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물론 안정성까지 해쳐 국민에게 손해를 끼치기 쉽다. 튼튼한 기업이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아니면 투자를 하고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용해 기업을 괴롭힐 수 있다. 거꾸로 부실한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업이라면 정경유착 때문에 투자를 늘릴 수 있다. 어떠한 경우든 국민연금은 손해를 보는 일이다. 한국은 관치금융의 폐단과 부실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의 실패로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풍토에 비추어보면 국민연금의 부실화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군다나 문제가 터진 다음에는 이런 저런 핑계로 정부가 책임을 피해가고 원인 규명도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노동정치>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매달리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민연금공단이 노동계 등의 추천을 받아 투자 기업에 사외이사와 감사를 임명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공단이 선택한 기업 집사나 이사는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십상이다. 기업 집사나 이사의 잘못으로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이 손해가 나고 국민연금도 수익률이 떨어져도 회복할 수 없다. 국민연금을 동원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정책은 국민연금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신의성실을 믿은 국민은 배신당하는 셈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도 위협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삼성 등 대기업을 관리하고 연금사회주의를 지향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기업 집사나 이사 및 감사를 좌파 성향 인사로 채운다면 연금사회주의는 현실이 될 수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격과 핵심 인사의 발언과 활동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려는 무리수, 어떻게 봐야하나? 스튜어드십 코드나 사외이사 추천제도의 도입은 노동계와 좌파 시민단체의 요구였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정책은 경제체제까지 전환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참여연대 등 좌파 시민단체와 손을 잡고 사회개혁을 요구해왔다. 이렇게 하면서 노동계는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왔고 ‘촛불혁명’의 동지로서 문재인 정부의 등장과 공약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노동계의 권력 확대로 나타난 노동정치가 국민연금까지 동원한 스튜어드십 코드 등의 도입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은 노동계의 입김이 강한 서울 등 지자체에서 이미 나타났다. 서울시는 공공성의 강화를 내세우며 산하 공기업에 노동이사제도를 도입했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확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간 시중은행에서는 노동조합이 금융의 공공성을 주장하며 노동이사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이를 뒷받침하려고 관련 법제도를 손본다는 말도 나왔다.

<스튜어드십 코드 등의 도입과 3가지 논리>

스튜어드십 코드나 노동이사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정책은 어디에 뿌리가 있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제민주화 그리고 최근에는 공공성의 강화를 들 수 있다. 3가지 모두 예전부터 들어왔고 건강하게 운영되면 환영할 수 있는 논리다. 그러기에 무심코 넘어가기 쉽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리진다. 3가지 모두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모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지난 30년 동안 경제민주화가 정치사회 분위기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경제력의 격차가 커지고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었다. 경제민주화의 정치적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좌파 지식인과 시민단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각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공공성의 강화를 주장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민주화운동 이전부터 기업 스스로 제기했던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논리로 왜곡되었다. 공공성의 강화도 소득분배를 고려한 경제성장정책의 한 축이었지만 이 또한 좌파의 평등주의 논리로 변질되었다.

헌법 119조2항은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위한 경제민주화와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민주화라고 말하지 않아도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고유의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원조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독일과 일본의 헌법에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한국에서는 경제민주화가 노동기본권 확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집중되었다. 대기업은 노사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노사관계가 대립적으로 바뀌었다.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도 노동계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노동정치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정책무대가 기울어지면서 경제민주화는 정반대로 나아갔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고임금과 고용보호 요구는 대기업·중소기업과 정규직·비정규직에 의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고임금 대기업의 고용비중이 40%에서 10%로 격감한 반면, 저임금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은 90%에 가깝게 올라가면서 10:90의 사회가 되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1990년대 말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유럽과 미국에서 회자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유럽은 개발도상국에서 다국적 기업의 아동노동과 환경파괴가 반면, 미국은 기업의 회계부정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촉발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스튜어도십 코드 도입 요구로 이어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반적으로 환경, 인권,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기업의 역할을 의미하지만 이해관계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한 경제민주화처럼 개념이 모호하다. 이러한 허점 때문에 정치사회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문제를 보였다. 민주주의 뿌리가 얕은 한국이 특히 그렇다. 사회적 책임은 경제사회주체의 권리와 의무의 균형에 기반을 두는데 경제민주화처럼 정부와 노동계의 기업에 대한 일방적 요구가 되었다.

<노동정치와 기울어진 정책무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경제민주화로 국민연금을 동원한 스튜어드십 코드나 노동이사제도 도입을 밀어붙이기 힘들다. 이를 추진하는 좌파에게는 보다 강력한 논리가 필요했다. 여기에서 공공성의 강화 논리가 등장한다. 공공성은 1970년대 유럽 등에서 기업과 개인의 이익 추구 활동을 억누르는 좌파 정책의 중요한 논리였다. 그러나 공공성 강화가 저성장-고실업-고물가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용도 폐기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좌파는 공공성 강화에 매달렸지만 기술혁신이나 세계화의 원리와 맞지 앉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와 달리 좌파가 득세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 논리로 공공성 강화가 각광을 받고 있다. 공공성 강화는 이론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반자본주의 운동논리로 효용성을 보였다. 골자는 민간 기업이 이윤 추구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고 정부는 기업이 공공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만들어야할 의무가 있으며 공공성을 강화하는데 노동계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성의 강화는 공공의 이익을 존중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공공성의 강화가 지배구조의 허점 때문에 특권 계층을 만들고 이들이 사익을 추구하는데 이용될 소지가 크다. 정부가 민간 기업이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도록 만들고 노동조합이 경영참여를 통해 그 기업을 실제로 지배한다면 고임금과 고용보호 확대의 도구가 된다. 공기업은 설립 목적이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 등 공공성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보다 구성원의 이익을 앞세우는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은행도 마찬가지다. 둘 다 주인이 없다보니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커지는 반면, 고객의 이익은 무시당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의 공공성 강화 주장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키우는 노동정치의 확대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나 노동이사제도 도입 등으로 노동계와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은 노동계에 기울어진 정책무대를 바꾸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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