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에서 밀려나 굴곡진 삶 살다 가

삼성 창업주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故 이 명예회장은 14일 오전 9시39분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故 이병철 회장은 이맹희·이창희·이건희 등 아들 셋과 이인희·이숙희·이순희·이명희 등 딸 넷을 뒀다. 
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1962년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에 입사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삼성물산 부사장, 중앙일보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등 초기 삼성그룹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그러던 그의 행보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이른바 ‘한비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삼성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인공감미료인 사카린 55톤을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온 뒤 팔려다가 적발된 일이다.
사건의 파장은 컸다. 이 일로 이병철 회장은 모든 현직에서 사퇴했고 한비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했다. 이 회장의 빈자리를 메운 건 장남인 그였다. 아버지로부터 삼성을 일시적으로 넘겨받은 뒤 총수 역할을 대행했다.  
이를 공식 후계의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오히려 후계구도를 뒤바꾸고 가문에서도 내쳐지는 계기가 됐다. 결정적 배경은 이 회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청와대 투서사건. 이 회장은 장남과 차남이 투서의 주범이라고 믿었고, 이후 부자 관계는 영영 회복될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이후 승계 과정에서 3남 이건희 회장에게 밀리며 삼성의 후계자 자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후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했다. 
1980년대부터는 계속 해외에 체류하며 삼성그룹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1993년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한 회상록인 ‘묻어둔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은둔의 생활’을 하던 고인은 2012년 2월 동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유산분할 청구소송을 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았으나 1∙2심에서 패한 뒤 상고를 포기했다. 
고인은 민사소송이 한창이던 2012년 말 폐암 판정을 받고 폐 절제수술을 받았다. 이후 암이 두 차례 재발해 방사선 치료 등을 받아오다가 최근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내인 손복남 CJ그룹 고문(82)과 슬하에 이재현 CJ 회장, 이미경 부회장, 그리고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있다.
1931년생인 이 전 회장은 경북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농업대학교대학원,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수료했다. 
안국화재 상무이사, 삼성문화재단 이사,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 제일비료 회장을 역임했다.
고인의 시신이 중국에서 항공편으로 운구된 직후 차려진 빈소에는 공식 조문이 시작되는 지난달 18일에 앞서 17일 오후 범삼성가 인사들이 먼저 들러 애도를 표했다. 
영결식은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필동 CJ 인재원에서 차남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 직계가족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삼성가 일가친척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장지는 경기도 여주 연하산 해슬리 골프장 옆에 있는 CJ 일가 사유지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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