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경영이야기]

개방해야 한다. 경쟁 생태계를 만들려면 개방해야 한다. 개방 없이 경쟁 없다. 이것은 경제상식이다.

패쇄주의, 끼리끼리문화, 순혈주의는 쇠락의 길이다. 삼성 등 우리나라 기업이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개방해야 한다. 그룹공채에 의해 입사한 한국인들끼리의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계 각국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차별없이 들어와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러한 조직문화, 즉 '용광로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비단 기업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입국심사 제도, 비자 제도, 이민 제도 등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경제전쟁은 인재·두뇌 쟁탈전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 어느 때보다 세계인재 영입이 필요하다"며 경제발전 핵심전략을 인재영입으로 정했다. 노벨상 수상자, 우수한 과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기업인 등에게 10년 체류 비자를 가족 포함하여 단 하루 만에 발급하고 있다. 일본도 우수인재에 대하여는 1년 체류만으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의 경쟁국들은 이렇게 과감한 우수인재 블랙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세계일류인재들이 우리대학, 우리기업, 우리정부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그러려면 국적법, 공무원법, 입국심사관련 법규 등의 획기적 수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수한 세계적 영재, 기술자, 과학자라면 삼고초려 해야만 하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적을 논할 필요가 없다. 이중국적이면 어떻고, 삼중국적이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지나친 국수주의는 애국이 아닙니다. 지나친 이념지향의 시대는 지나갔다. 실용주의시대다. 최소한 우리나라 일류인재의 유출만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개방과 관련하여 예민한 문제가 상품, 서비스, 인력 시장의 개방 문제다. 원래 자유무역, '개방'은 강자의 논리이고 보호무역, '보호'는 약자의 논리다. 자국의 취약 산업, 품목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육성기간이 필요하다. 지금 막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유치단계 산업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또 새로운 신성장동력인 미래 먹거리인 전략 산업, 품목의 경우도 전략적 보호육성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 경제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자유무역질서의 틀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이런 보호육성의 벽은 시간문제일 뿐 장기적으론 허물어지고 만다. (최근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에 의하여 보호주의 색채가 강해져 가고는 있지만)

따라서 이런 보호기간에 경쟁력을 강화하여 세계시장에서 싸워 이길 체력(경쟁력)을 만들어 놔야 한다. 개방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체력과 기술과 전략이 강해지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만 보호된다면 영원히 약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어렵고 두렵지만 한번은 글로벌 세계전투의 링 위에 올라가야 한다. 상식과 통념을 파괴해야 한다.

경쟁력은 차별화이며, 차별화는 바로 '섬싱 스페셜, 섬싱 디퍼런트'라고 했다. 따라서 스탠더드, 매뉴얼을 따르는 것은 원오브뎀(one of them)에 불과할 뿐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과거의 관행, 상식, 통념을 파괴하지 않고는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슘폐터가 얘기한 것처럼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삼성물산이 할인점 형태의 유통업에 진출하기로 하고 브랜드는 '홈 플러스'라고 하여 1호점을 대구의 제일모직 부지 일부에 건설하기로 했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점포를 만들 것인가, 즉 그 점포의 콘셉트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통상 유통업계에서는 업태를 전통적인 백화점, 식품 위주의 수퍼마켓, 최저가 위주의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하되, 대신 시설, 인테리어, 고객 편의, 종업원 서비스는 백화점보다 훨씬 수준을 낮추고 부지의 위치도 시외나 도시에서 떨어져 땅값이 저렴한 곳에 하는, 미국 월마트식의 할인점, 그리고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 복합쇼핑센터 등으로 구분한다.(이외에 전통시장도 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새롭게 부상하여 영업 신장세도 두드러진 할인점 형태로 하는 것으로 종전부터 검토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신세계 E마트가 이미 진출하여 상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세계는 유통업에 대한 경험, 전문인력, 구매파워, 협력업체와의 네트워크 등 모든 면에서 이 업에 처음 진출하는 우리하고는 상대가 안 되는 강자인 데다가 먼저 진출했다는 기득권마저 가지고 있는데, 과연 똑같은 업태로 해서 경쟁에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쇼핑문화에 비춰 볼 때 과연 이런 미국식 할인점 업태가 지속적으로 장기간 성장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서 또한번 지금까지 검토해 온 선입관을 버리고 또 지금까지 상식으로 되어 있는 업태 구분에 연연해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격론이 벌어졌다. 외부에서 특채하여 들어온 유통 전문인력들은 오랜기간 세계의 유통업계와 전문가들이 유통업태를 구분하여 의사결정을 해왔고 지금 매출경향 등을 종합 판단해 보면 전통적인 할인점 형태로 가야 한다고 했다. 또 한편에서는 천장 파이프와 천장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되고 종업원 서비스도 제로에 가까운 전통적인 할인점에 대한 거부감도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유통업의 업태라는 것은 정형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고, 문제의 핵심은 고객의 취향과 그 나라 소비자의 쇼핑형태 등 쇼핑문화에 좀 더 다가서야 하는 것이 성공의 키가 아닐까. 미국,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의 쇼핑문화가 똑같지 않다면 유통업의 업태와 콘셉트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나라 쇼핑문화의 특이점이랄까 특징은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만이 아닌, 거기서 즐기고 시간 보내고 가족, 친구 등을 만나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생활하는 장소, 또 상품정보 습득 등 복합적 욕구를 해소해 주는 생활정보의 거점이자 만남의 장소가 아닌가. 쇼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공간, 여가공간, 스트레스해소 공간으로 생각하여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설사 백화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소비자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콘셉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창고형태의 삭막한 분위기에 값만 싼, 그런 업태의 콘셉트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전혀 새로운(당시로서는) 업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가격은 전통적인 할인점과 같이 저가정책을 견지하지만, 인테리어 등 시설과 고객접대, 주차관리 등 서비스 부문과 문화센터는 백화점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할인점과는 확연히 차원이 다른 수준까지 끌어 올려 차별화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과 격론의 과정을 거쳐 1997년 9월4일 드디어 오픈했다. 그날 담당중역으로부터 영국출장 중이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오픈 2시간 만에 고객이 너무 많이 와서 안전사고가 날까 염려되어 영업을 중단하고 문을 닫아야 하겠"라고···.상식과 통념, 관행을 파괴하려면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방법, 기술에 반드시 문제가 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있게 마련이다'는 문제의식과 확신이 생활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배고픔이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늘 배고파 하라"(stay hungry)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1984년 1월 당시 조선일보 선우휘 주필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정말 재미가 나고 적극적으로 열의를 쏟습니다. 뭔가를 새로 창조한다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 아침, 저녁에도 그 생각, 자고 일어나서도 그 생각, 무언가 부족한 게 없나, 있으면 보강하고 물어 보고, 회의를 해서 안 되는게 있는지 알아보고 ··· 난 똑 같은 일을 하라면 대단히 싫어요"라고 했습니다. (홍하상, 이병철 경영대전)

관행 등 반복 계속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성취감을 즐긴 것 같다.

상식과 통념을 파괴하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배고픔은 도전이다. 리스크 테이킹 없이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에 기업가 정신이 없으면 정체와 쇠퇴가 있을 따름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가들에게 과연 이러한 도전, 기업가 정신이 있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것에 대한 배고픔과 도전일까. 세계일류상품과 기술에 대한 도전일까. 만약 이런 게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

한 나라의 경제는 기업가 정신의 강약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세계경제의 역사가 증명한다.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 이것은 비단 기업인에 국한된 책무가 아니다. 온 국민, 그리고 정부, 모두의 책무다.

기업가를 격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옥죄어서는 안 된다. 기업가로 하여금 마음 놓고 투자 등 도전하게끔 해줘야 한다. 옥죄는 규제, 국내지향적인 정책 등은 재고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타이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