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근 지속되고 있는 위안화 하락세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번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위안화 가치는 최근 3개월 동안 급격히 하락했다. 중국 역내 외환시장에서 지난 4월 말까지 달러당 6.3 위안 수준이었던 위안화 환율은 27일 현재 6.8 위안까지 치솟았다. 석달 동안 달러화 대비 통화 가치가 7% 넘게 하락한 셈이다.

 위안화 하락세는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기준환율의 움직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에서 시장 환율은 기준환율의 상하 2% 범위에서 움직인다.

 인민은행은 지난 25일 위안화 기준치를 1달러=6.8040위안으로 설정 고시했다. 위안화 기준환율이 6.8 위안을 넘어선 것은 2017년 6월28일 이후 처음이다. 인민은행은 26일 위안화를 0.56% 절상했지만 하루만인 27일 다시 0.41% 떨어뜨렸다.

 미국은 위안화의 급격한 하락세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중국이 무역 경쟁력을 강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달러화가 너무 강세다. 강한 달러는 미국을 불리하게 만든다. 중국 위안화는 바위처럼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유럽연합(EU), 다른 이들은 자신들 통화를 조작하고 기준금리를 낮췄다"며 "그런데 미국은 달러가 날이 갈수록 강세가 되고 있는데도 금리를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도 2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위안화 약세를 주시하고 있으며 위안화 환율이 조작됐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재무부가 10월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는 매년 4월과 10월 발표된다. 중국은 보고서가 발표되기 시작한 2016년 4월 이후 매번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됐다. 이는 '환율 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은 아니지만 환율 조작 여부를 계속 모니터링하겠다는 경고다.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될 경우 1년간의 협의를 통해 통화 저평가와 무역 역조 해소 등을 요구받게 된다. 이후에도 문제가 시정되지 않으면 금융지원 금지,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중국은 위안화 가치가 시장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최근 기준환율의 조정도 정상적인 경제 정책의 일환이라는 반론을 펴고 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위안화 환율을 주로 시장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며 "중국은 통화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해 수출을 자극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와 언론들도 중국이 무역 경쟁력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최근 경기 둔화 우려에 대응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쓰면서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5일 위안화 가치 하락이 미국을 겨냥한 인위적 환율정책의 결과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인민은행은 지난 23일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를 통해 5020억 위안(약 83조4900억원)을 중국 금융시장에 공급했다. 은행 지급준비율 추가 인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금융 시장의 신용 경색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의도가 크다는 설명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역시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달러가 고평가돼 있는 것이지 위안화가 저평가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IMF는 지난 24일 발표한 연례 대외부문 보고서에서 미국 달러의 가치가 약 8~16% 높게 평가됐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국 위안화는 대략적으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임스 대니얼 국제통화기금(IMF) 중국 책임자는 26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달러 대비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는 여전히 적정한 수준"이라며 "다른 신흥시장과 비교해볼 때 하락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중 무역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미국이 위안화 절하를 문제삼으며 전면전에 나설 여지는 있다.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는 3개 요건(▲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상당한 경상흑자 ▲지속적 일방향 시장개입) 중 3개 모두에 해당하면 심층분석 대상국, 2개에 해당하면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1개 요건(현저한 대미 무역흑자)에만 해당되는데도 지난해 4월 보고서에서 새로운 기준까지 도입하며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묶어뒀다. 이는 그만큼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크고, 임의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의지도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이번 보고서에서 3개 요건에 모두 해당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이 1988년 도입된 종합무역법을 활용하면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중국은 이 법에 따라 1992년과 1994년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기간 중에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 공세를 통해 1985년 플라자합의 같은 결과를 바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골드만삭스는"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미 달러화의 '협상적 약세'로 해결된 이전 무역 전쟁의 대본을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이 최근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어 작은 충돌이 환율 전쟁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이 계속해서 보복할 경우 관세 조치를 5000억 달러 규모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대미 수입액은 연간 1300억 달러 규모여서 같은 규모의 관세 보복을 하기 어렵다. 미국이 관세 조치의 규모를 늘릴 경우 중국은 계속해서 위안화 절하와 같은 비관세적 보복을 택할 수 있다.

 닐 매키넌 VTB캐피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4일 경제전문지 포천에 "무역 전쟁의 위험은 계속 심화되고 있으며, 전면적인 통화 전쟁에 대한 위험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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