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2018년 10월 18일로 결정된 ‘전라도 정도 천년’ 기념사업을 환영한다.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딴 전라도는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명명됐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손을 맞잡고 7개 분야 30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라도에 호기가 왔다. 모처럼 하나 된 전라권은 빛나는 구슬을 지혜롭게 꿰어야 한다.

겉도는 한중 문화교류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서울대학교에서 대중연설을 했다. 그는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한중 양국은 서로 도와주면서 위기를 극복했다”며 한중관계 인물을 언급했다. 중국의 장수 진린과 등자룡은 정유재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물리쳤다. 중국 구화산에 입적한 승려 김교각 스님, 당나라에서 관리를 지낸 해동공자 최치원 선생,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만든 정율성 선생이다. 시 주석은 “한국과 중국은 이웃사촌”이라며 “대한민국, 사랑합니다”로 강연을 마감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시진핑 주석의 아내 펑리위안 여사는 정원에 배추를 심어 김치를 담가먹을 만큼 한류를 사랑하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즐겨본다고 했다.

광주광역시 윤장현 시장도 때에 맞춰 차이나프렌들리 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세계 G2로 부상한 중국과의 우호관계, 교류를 확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한중교류는 역사의 깊이보다 현실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분명 좋은 소재가 많은데 꿰어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의욕을 가지고 출발한 한중문화교류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율성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예로부터 서해안은 중국과 밀접한 지역이다. 전라도는 비옥한 땅과 천혜의 관광자원이 있는 해상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중국 양주는 최치원 기념관을 짓고 향후 연간 200만 명 이상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당송의 100대 시인에 들어있는 최치원 선생, 그의 사당인 ‘지산재’는 광주에 있다.

중국에서 신격화된 해상왕 장보고. 그가 세운 청해진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교두보였다. 중국 산동성의 적산법화원, 어찌 한국이 아닌 중국에 장보고의 동상이 우뚝 서있나.

한국과 중국을 잇는 인물은 수없이 많다.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보면 시진핑 주석이 언급했던 김구 선생의 흔적도 광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한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인 정율성 선생은 광주의 아들이다. 13억 중국인들이 아리랑처럼 부르는 ‘연안송’, ‘중국인민해방군가(팔로군행진곡)’ 등 360여곡을 작곡한 정율성 선생. 그는 중국의 3대 음악가로 평가되어 있다. 한국에서 정율성의 역사적, 문화적 입지는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가시밭에 떨어진 싹이라도

2003년부터 싹을 틔운 정율성 선생 선양사업.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양한 교류가 이뤄졌지만 불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서울대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립서비스를 위해 정율성을 거론한 것인가. 정율성 선생만 보더라도 중국은 한국에 고마워해야 한다. 대규모 사절단을 꾸며 광주를 방문하여 정율성 기념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렇다 할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광주는 정율성 음악축제를 비롯하여 성악콩쿠르, 학술행사,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활성화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는 것인지, 정율성 기념사업이 지지부진해 보인다. 이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중이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정율성 기념사업은 전라도 화순, 광주, 전주가 모두 포함된다. 정율성은 광주에서 태어나 화순에서 자라고 전주에서 공부했다. 이후 목포와 상해를 거쳐 연안으로 갔다. 정율성은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며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다. 가난한 소년 정율성이 중국 대륙을 울린 음악가가 되기까지는 시대적 희생이 따랐다. 우리는 정율성의 생애를 통해 한국과 중국을 잇고 암울했던 시대를 당당하게 헤치고 살았던 그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에 흩어진 구슬을 꿰어야 한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야 한다.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이 가시가 무섭다고 싹을 안 틔우랴. 사드(THAAD)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천년 또 천년을 준비하자

명나라의 장군 진린의 후손도 전라남도 해남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 후손들은 18대째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주자의 4대 증손 주잠이 세운 주자묘는 전라남도 화순에 있다. 매년 꾸준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보다 디테일한 세부계획이 필요하다. 전라도와 중국을 잇는 역사와 문화 인물로 한중교류 인명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피땀으로 지켜오고 왕래하는 이야기를 보다 널리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온고지신의 미덕이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문화가 옛 사람들의 지혜로 맺힌 열매들이기 때문이다.

무안공안을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키워 서해안의 그림 같은 섬을 널리 알려야 한다. 영암의 F1경기장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어 다가오는 천년 또 천년을 맞이하자. 시진핑 주석의 말처럼 한국과 중국은 어떠한 경우라도 사이좋은 ‘이웃사촌’이다. 글/김을현(대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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