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의 책임경영 강화 치원...갤럭시노트7 사태 계기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에 대한 책임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 당시 주주들과의 갈등에 이어 이번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發火) 사고에 따른 전량 회수ㆍ교체(리콜) 등 경영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 재계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병상에 있는 부친(이건희 회장)의 자리를 이어 받는다는 부담 때문에 등기이사 등재를 주저했으나 어차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한 그룹 재편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이재용 시대의 공식화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는 판단에서 이번 등기이사 등재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삼성전자 이사회는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핵심 경쟁력을 위한 사업재편, 기업문화 혁신 등이 추진돼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공식적인 경영 참여를 더 미룰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사내 등기이사 선임은 이재용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5월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을 맡게 되면서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키운 것이 그룹 경영 승계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4.68%, 삼성화재 지분 3.1%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2.18%, 삼성물산 지분 1%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등기이사 선임은 이건희 시대와 다른 책임 경영 시대에 들어간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사회는 주주총회 소집과 대표이사 선임, 사업계획 확정 등 회사 경영에 대해 결정한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진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대주주이면서도 등기이사가 되지 않은 채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등기이사들만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작고(1987년)한 후 삼성그룹 회장직에 올랐지만 11년 후인 1998년에야 등기이사를 맡았다.

이 부회장의 첫 번째 과제는 갤럭시노트7 리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달 초 최소 1조5,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갤럭시노트7 250여만대 전량 리콜 을 최종 결정하면서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갤럭시노트7은 미국 정부와 해외 항공사 등이 잇따라 사용 중지 권고를 하면서 새로운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책임경영으로 정면 돌파해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갤럭시노트7 판매 재개를 최대한 앞당길 수 있는가가 향후 이 부회장의 행보를 결정짓는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과제는 이 부회장의 향후 그룹 내 역할이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이 내부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이사회 의장이 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 경우 경영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해야 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삼성은 이사회 의장과 CEO를 분리해야 할 단계에 왔다”며 “이 부회장은 의장을 맡고 CEO는 보다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이사회는 프린터 관련 소프트웨어 사업을 담당하는 프린팅 솔루션 사업 부문을 이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휴렛패커드 인코퍼레이티드(HPI)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 규모는 10억5,000만달러(약 1조1,160억원)다. 삼성전자의 프린팅 사업 매각 결정도 잘 하고 있는 사업에만 역량을 쏟아 붓는 이재용식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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