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를 상대로 폭언과 구타를 했다는 증언이 보도되면서 '갑질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진심이 짓는다'는 카피로 유명한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이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구타를 일삼는 등 이른바 '슈퍼 갑질'을 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등 위험천만한 지시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

이해욱 부회장은 누구

1997년 이준용 명예회장이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그룹 회장 자리를 김병진 대림엔지니어링 회장 겸 대림정보통신 사장에게 물려줬다. 
 
당시에는 이를 두고 와병설과 경영자로서의 자질론 등이 불거졌다.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전문 경영인이게 넘겨주는 사례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2011년 대림산업은 전남 광양에 위치한 이순신대교 현장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부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했다. 
 
1997년 이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20년 가까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대림그룹이 오너일가 지배체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지난 2014년 이 부회장과 ‘투톱’ 체제를 이끌어오던 김윤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김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김동수, 이철균 사장과 김재율 부사장 등을 새 등기임원으로 선임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이해욱 부회장의 단독경영은 시간문제였다고 봤다. 오너가인 이 부회장이 1968년생으로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당분간 김 부회장과 공동 경영 체제로 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경영을 모두 총괄할 것으로 예상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1968년생으로 경복고와 미 덴버대 경영통계학과, 미 컬럼비아대 응용통계학 석사를 거쳐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입사, 2000년 대림산업 건설부문 기획실장에 이어 2005년 8월 유화부문 부사장, 대림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거쳐 현직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대림그룹의 핵심 사업 분야인 플랜트 건설 부문의 기본인 영업, 사업수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의 업무수행을 통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는 등기 대표이사다. 회장 타이틀만 달지 않았을 뿐 명실공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부사장에서 부회장 승진 후 1년 만에 대표이사로 올라섰다. 
 
속도감 있는 승진답게 그의 사업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속도 경영’이다. 아울러 어려운 건설업계 상황을 책임경영으로 돌파하려는 오너일가의 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대림은 민간 개발사업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이 부회장이 대표를 맡은 이후부터 비즈니스호텔, 오피스 빌딩 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이 부회장 체제가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이 존재감을 나타낸 것은 ‘e-편한세상'을 통해 아파트를 브랜드화 시키면서다. 딱딱한 아파트 이미지를 신개념 주거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관급공사를 통해 대형 건물 위주의 대림의 경직된 기업 문화를 바꿔 놓은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부회장에게는 건설사업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사업에서 아시아 최고의 전문화 된 기업을 꿈꾸고 있다. 특히 비주거용 부동산 개발은 이 부회장 대표이사 취임 후 속도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대표 취임 후 비주거용 개발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외 플랜트사업과 리스크 관리로 이익을 실현한 데 이어 비주거용 부동산 개발과 중장기적으로는 수익형 부동산 외에 민자발전 플랜트(IPP)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속도 경영 이면에는 취미생활이 있다. 이 부회장은 훤칠한 외모에 걸맞게 오토바이로 속도감을 즐긴다. 계열사인 대림자동차의 업무 파악을 위해 타던 것이 취미로 발전했다. 
 
지난해 3월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고밀도폴리에틸렌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 때는 현장 을 진두지휘해 원만한 사고 수습을 했다는 평이다. 
 
대림산업의 최대주주는 21.67%를 보유한 대림코퍼레이션이다. 이 부회장은 지분을 0.47% 가지고 있다.
 
이 대표는 대림산업 지분이 미미한 대신 최대주주인 대림코퍼레이션 주식 32.12%를 가진 2대 주주다. 이 회사 최대 주주는 이 대표 부친인 이준용 명예회장으로 60.96%를 가지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은 납사를 원료로 생산된 기초 유분과 합성수지의 석유화학 도소매업, 해운물류 서비스업을 하는 회사다. 
 
대림의 모체는 1939년 故 수암 이재준 창업회장이 설립한 부림상회다. 경인선 부평역 앞 초가 10칸 규모 목재 판매상이다. 수암은 해방 이후 미 군정청으로부터 원목을 값싸게 불하받아 교실신축용 목재로 팔면서 돈을 벌었다. 
 
1947년 본사를 서울 용산구로 옮기면서 대림산업이란 상호를 달았다. 본사 건물을 짓기 위해 건설업 면허를 받은 수암은 그 길로 건설사업에 투신했다. 
 
한국전쟁 후 반월염전, 대전도서관, 청계천 복개, 국립의료원 신·증축, 여수항, 춘천댐 등 크고 작은 관급 공사를 따내며 사세를 바르게 확장시켰다. 1976년 경영권을 장남 이준용 명예회장에게 넘기고 대한건설협회 일에 열중했다.
 
이 명예회장은 서울대를 나와 美 덴버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대림산업 사원으로 첫발을 디뎠다. 때가 월남전이 한참이었고 대림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었다.
 
이 명예회장은 베트남 현장에서 일반직원과 섞여 근무하면서 경영 수업을 했다. 1997년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저작권자 © 타이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