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만에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生’을 다시 읽었다. ‘자기 앞의 生’은 에밀 아자르의 1975년 콩쿠르 상 수상작품이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은, 1980년 로맹 가리가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이후,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로맹가리는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하늘의 뿌리’로 1956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 콩쿠르 상을 받아,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은 열네 살의 모모(모하메드)와 예순 여덟 살인 로자 아줌마와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로자 아줌마는 양육할 권리가 없는 창녀의 자식을 몰래 키워주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유태인인 그녀 역시 창녀였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온 여인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돈을 받고 자신을 양육해 준걸 알지만 치매에 걸려 죽을 때까지 그녀를 돌본다. 모모는 그녀를 사랑했고, 사랑 없이는 두려워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칠층 건물에 살면서 지하실에 은신처인 ‘유태인 동굴’을 만들어 두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가 죽고 삼주동안이나 모모는 그녀와 같이 지내다 발견된다. 지독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며, 누구나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생명 있는 것들의 측은함에 관한 소설이며, 사랑 없이 살 수 있냐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가끔 25년 쯤 된 내 오피스텔이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살았던, 파리 외곽의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내 오피스텔은 10층이고 엘리베이터가 있다. 로자 아줌마는 육중한 몸으로 7층을 오르내려야 했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사는 거리에는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아랍인인 하밀 할아버지(모모도 아랍인이다)와 유태인인 로자 아줌마, 흑인도 살고, 5층에는 볼로뉴 숲에서 몸을 파는 여장남자 롤라 아줌마도 살았다. 착한 롤라 아줌마는 모모에게 용돈을 주기도 한다. 너무 늙어 앞이 보이지 않는 하밀 할아버지는 육십년 전 한 처녀(아밀라)에게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한 사랑의 약속을 아직도 지키며 죽음을 기다린다. 노망이 들기 전 모모에게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해준다.

내 오래된 오피스텔에도 온갖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무리 불특정 시간대라 해도 엘리베이터를 십여 년 간 타고 오르내리다보면 사람들의 직업을 저절로 알게 된다. 오후 다섯 시 쯤 되면 싸구려 향수와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주로 사십대의 여자들이 삼삼오오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면 부족과 영양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술과 담배에 찌든 듯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다. 옷 또한 지금 유행하고 있는 핫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소재가 좋지 않아 어딘지 싸구려 티가 나는 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양옆의 거울을 미친 듯이 쳐다보며 얼굴을 살폈다. 옆에서 보면 인형 눈 같은 인조 눈썹을 붙이고 파운데이션은 두껍게 발라 떡이 져 뭉쳐있기 일쑤였다. 차라리 화장을 엷게 하면 훨씬 피부가 좋아 보일 텐데, 하고 나는 혼자 생각하곤 했다.

대부분 결혼을 했다가 실패한 여인들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여자들이었다. 한 시간에 3만원이니 하루에 잘만하면 십만 원 이상을 벌수 있는 것이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파출부를 하거나, 호텔의 룸 메이드보다 훨씬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제 몇 탕 뛰었느냐고 묻기도 하고, 동료 중 누군가가 술을 너무 먹어서 같이 파트너로 일하기 싫다고 하기도 하고, 짠돌이 단골손님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전화가 오면 큰소리로 받았다. 아들이었다.

“아들! 엄마 일 나왔으니까 학원 다녀와서 밥 먹고 숙제하고 자”

나는 그런 전화를 받는 여자들을 본 후, 그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 일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저 일을 하는 것이다. 저마다 가슴에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칼라를 세우고 흰 면바지를 입고 휴대폰을 세 개 쯤 손에 쥐고 옆구리에는 크러치 백을 끼고 얼굴은 담배에 절은 듯 검고, 불안한 눈빛은 언제나 핏발이 서 있는 남자들은 모두 도우미를 관리하는 ‘뚜쟁이’들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그대로 얼굴이나 몸에 배는 모양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저 여자는 도우미고, 저 여자는 4층의 회계 법인에 근무하는 여자고 저 여자는 6층의 세무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자(둘은 구별이 쉽지 않지만 내리는 층을 보고 안다)고, 저 130킬로는 나갈 것 같은 ‘무대뽀’ 아저씨는 4층의 성인용품을 파는 남자라는 걸 알았다.

남자가 1층 게시판에 ‘성인용품 다량 입수, 초특가 세일 402호’라고 인쇄한 A4용지를 앞 핀으로 붙이는 걸 우연히 목격했던 것이다. 저 여자는 8층의 ‘헤나염색’을 해주는 여자고, 저 여자는 7층의 발 마사지하는 여자다. ‘헤나염색’ 하는 여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게 명함을 주었고, 발 마사지 하는 여자는 오피스텔 현관문 마다 명함을 붙일 때 나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25년 쯤 된 오피스텔에는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든 여자들이 들랑거린다. 물론 남자도 있다. 9층에는 가락시장 상인들이 밤에는 나가 경매하고 낮에는 와서 쉬는 곳도 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점퍼차림에 거친 얼굴과 수면 부족의 눈빛이다.

그들도 모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돈을 벌기 위해 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3층에는 ‘빠칭코’ 게임방도 있다. 그곳을 들랑거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벌겋다. 제일 안쓰러운 것은 오십도 훨씬 넘은 듯한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하고 너무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기이한 화장을 하고 민망한 옷을 입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여자를 볼 때마다 ‘로자 아줌마’가 생각났다. 치매에 걸린 ‘로자 아줌마’는 예순 여덟에도 기이한 화장과 보기 민망한 옷을 입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민망한 옷’을 팔러 다니는 할머니를 안다. 시장갈 때 쓰는 캐리어에 이불보따리만한 보따리를 두 개 싣고 오가는 걸 본 것이다. 할머니는 100살은 되었을 것 같은 주름투성이 얼굴에 체구는 초등학교 3학년 같이 작고 말라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보리쌀 소쿠리 쥐 눈처럼 작고 반들거렸다.

얼굴은 늙었지만 눈빛에 욕망이 살아 있었다. 그 눈 위의 푸른빛이 도는 눈썹 문신은 짐승의 촉수나 더듬이처럼 사람을 살필 때 꿈틀거렸다. 할머니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옷을 팔러 다닐 것이다. 그 작은 할머니를 보는 순간 ‘하밀 할아버지’가 생각났고, ‘하밀 할아버지’의 연인 ‘아밀라’가 떠올랐다. 저 할머니의 가슴에도 젊은 날 ‘하밀 할아버지’같은 연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 할머니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24시간 365일 휴무 없이 숙식하며 근무하는 일층 식당 ‘무안낙지 집’의 연변아줌마들이 가끔 자신의 아들딸과 통화하는 걸 듣기도 했다. 지하 3층 계단 밑의 작은 삼각형 공간에 기거하는 오피스텔 청소하는 아줌마도 아주 키가 작았다. 그 삼각형의 방을 볼 때면 로자 아줌마의 ‘유태인 동굴’이 생각나곤 했다. 또한 지하 3층 기계실엔 겸손함이 얼굴과 몸에 배인 한없이 착해 보이는 아저씨도 산다.

인생은 누구나 홀로 이 우주와 맞서 의연하게, 혹은 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자기 앞의 生’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사랑할 사람 없이 살아 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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