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좌),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6년간 ‘형제의 난’ 결말은 계열분리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로 분쟁시작

대법원 판결로 금호家 박삼구·찬구 형제 회사가 이제는 법적으로 완전한 남남이 됐다. 충분한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10조이상의 자금을 끌여들여 대우건설·대한통운을 인수했던 것이 분쟁의 화근이 됐다. 그룹의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는 와중에 형제간 밀약이 깨지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금호家의 과거·현재·미래를 짚어본다.
글 | 김지완 기자 


   갈등의 시작
대법원 판결로 법적으로 완전분리
‘승자의 저주’로 그룹분열 초래

 

금호家는 창립 70주년을 앞두고 구랍 10일 대법원의 최종판결로 법적으로 완전히 갈라서게 됐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기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을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상고를 기각하고 두 그룹이 서로 다른 기업집단이므로 분리해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화·금호피앤비화학 등 8개 계열사로 구성된 금호석화그룹과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등이 포함된 24개 계열사로 이뤄진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나뉘게 됐다. 
10년전인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신성장동력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2006년 11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해 대우건설 지분 72.1%를 주당 2만6262원 6조4225억원에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으로부터 풋백옵션의 계약을 적용해 인수자금 3조원을 조달했다. 당시 계약내용은 전체 인수자금 가운데 지분 39.6%를 재무적 투자자들이 부담하는 대신 2009년말까지 금호가 주당 3만2500원에 되사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2009년 리만브라더스 파동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어지며 건설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졌다. 주가는 1만원 내외를 움직이며 풋옵션 행사가격을 크게 밑돌았다. 투자자입장에서는 풋옵션 행사를 주저할 이유가 없었던 상황이 만들어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4조2000억원의 풋옵션 정리자금을 마련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그러나 두 형제는 2007년말 발발한 서브프라임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이듬해 3월 대한통운을 4조1040억원에 인수해 유동성 문제를 키웠다. 
대우건설 풋백옵션 기일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9년 6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해 대우건설 재매각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기침체로 대우건설 인수여력을 가진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우건설 매각 불발로 서울고속터미널, 금호생명에 대한 매각결정을 내렸다. 같은해 12월30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 형식으로 구조조정을 선언하게 된다.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한통운을 CJ그룹에 매각하고 금호산업 자산인 금호고속,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주식을 패키지 딜 형태로 처분했다.

 

   소송으로 얼룩진 금호家
계속된 소송으로 경영권 흔들기 이어져
‘65세 룰’ VS ‘형제간 약속 불이행’

형제의 난 
금호家 형제들도 두산그룹의 형제경영을 빼닮은 내부밀약이 존재했다. 이른바 ‘65세 룰’로 불리는 경영승계 시점이다. 故 박인천 창업주 타계이후 금호家 형제들은 65세에 경영권을 승계했다. 
창업주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65세에 회장직에 물러나며 둘째 故 박정구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故 박정구 회장은 65세에 고인이 되며 이 법칙은 지켜졌다. 2000년 9월 박삼구 회장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65세 룰’이 적용되는 시점은 2010년이었다. 
대권승계가 1년 남았다고 생각한 당시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부분 회장은 그룹 유동성 위기 타개책으로 대한통운 매각 등을 건의했지만 박삼구 회장에 의해 묵살됐다. 
또 박삼구 회장 주도하에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가 진행됐다. 
그룹전체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지고 형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박삼구 회장은 물러날 뜻이 없었다. 
정상적인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분리를 추진했다. 
두 형제는 합의에 의해 무려 28년간 균일한 지분을 보유했으나 2009년 3월 금호산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당시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분 회장은 형 몰래 금호산업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대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0.1%에서 18.47%까지 대폭 늘렸다. 
다른 밀약인 ‘균등 지분 보유합의’를 어긴 것에 격분한 박삼구 회장은 같은해 7월 동생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자신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쪼개져 독립경영이 이뤄져 왔다. 

끝없는 소송전 
갈라선 두 형제는 금호그룹 전체를 차지하기 위한 법정싸움이 시작됐다. 지난해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로 선임되자 박찬구 회장은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문제가 없다며 박삼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박삼구 회장 금호석유가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를 매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반격했다. 
그룹 위기 당시에 금호석유화학을 분리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지분 매각에 대한 합의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정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시키는 내용을 담은 계열분리 소송을 제기했다. 
경영권을 상실한 만큼 그룹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박찬구 회장측의 주장이었으나 법원판단은 달랐다. 박삼구 회장이 일상적인 경영뿐만 아니라 사실상 사업내용을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해 박삼구 회장의 편에 섰다. 
이이후에도 박찬구 회장은 검찰의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수사에서 배후로 형인 박삼구 회장을 지목해 갈등을 키웠다. 
숨가쁘게 여러차례 소송을 이어왔으나 소강기 없이 다시 상표권 소송과 계열분리 소송이 이어졌다. 
한편 구랍 29일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에 금호산업 인수대금 7228억원을 완납하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동생인 박찬구 회장과의 갈등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써먹는 카드일 뿐”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끝나지 않은 분쟁
금호타이어 인수전 놓고 한판승부 예고
금호상표권, 항소 진행하며 대법원까지 갈 것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금호’라는 상호는 공동사용하지만 로고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금호’라는 상호는 공동사용하지만 로고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구랍 29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대금 7228억원을 채권단에 지급해 금호산업의 경영권(지분50%+1주)을 되찾았다. 
이로써 금호산업의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 금호터미널, 금호고속 등이 모두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귀속됐다. 
그러나 또 다른 핵심 계열사 금호타이어 인수는 금호석유화학그룹과 뜨거운 경쟁이 예상된다. 금호석화는 합성고무의 주원료인 부타디엔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부타디엔의 90%이상은 타이어의 주원료로 공급된다. 금호타이어가 박삼구 회장의 품에 들어갈 경우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거래처를 잃을 위기에 놓이게 된다. 
故 박인천 창업주가 광주여객에 타이어를 직접 공급하기 위해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를 설립했다. 전문기술자를 영입해 설비 개선을 이뤄 5년만에 KS마크를 취득했다. 이후 군납업체로 지정돼 태국 등지에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가 됐다. 
창업주의 창업정신이 깃든 금호타이어에 박삼구 회장의 관심도 대단하다. 박 회장은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에도 대표이사직을 유지해 왔다. 아울러 장남인 박세창씨를 금호타이어 부사장에 앉혀 계속 관리해왔다. 지난해 3월 인사에 정기인사에서 박세창 부사장이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로 승진시켰으나 주주협의회 반발로 3일만에 물러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그룹 재건을 위해 금호산업과 더불어 금호타이어 인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표권 소유권 분쟁 
박인천 창업주는 운수업을 시작한 지 27년만에 금호실업㈜, ㈜광주고속, 삼양타이어㈜, 전남제사㈜, 한국합성고무㈜, 삼화교통㈜ 등 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의 총수로 취임했다. 현재 두 그룹의 이름으로 쓰이는 ‘금호(錦湖)’는 박 창업주의 아호다. 
‘금호’라는 상표권을 놓고도 치열한 법적 다툼이 진행되고 있다. 박삼구·찬구 두 형제의 경여우권 분쟁이 생기기전인 2007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화를 양대 지주회사로 재편하면서 ‘금호’와 ‘아시아나’로 된 상표권에 대해 공동 명의로 등록했다. 
하지만 그룹 내 상표 사용권은 금호산업이 보유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 후 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며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에 브랜드 사용료 지불을 중단했다. 
이에 금호아시아나측의 박삼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은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이 보유해 금호아시아나측에 귀속된다는 주장을 펼치며 금호석화를 상대로 2009년부터 10월부터 상표권 미납분 280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읋 냈다. 
금호산업은 “금호 상표는 1972년 설립된 지주회사 ㈜금호실업이 최초로 사용한 이후 현재의 ㈜금호산업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도록 계속돼 출원·등록·관리를 해오면서 법적·정통성을 승계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측의 상표사용 계약은 금호석화가 이 상표 지분의 상당 부분을 이전받은 이후에 체결됐고 금호석화가 상표지분이 이전되기 전에 금호산업이 해당 상표의 권리자임을 인정할 아무런 문서도 작성된 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1심에서 패소한 금호아시아나측은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지분구조
아시아나, 금호석화 2대주주지만 위협안돼
금호석화, 박찬구 父子 실효적 지배

두 형제 모두 아시아나항공의 개인 지분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실질적인 1·2대 주주로 평가받고 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로 지분 30.08%를 보유하고 있다. 구랍 29일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지분 50%+1주 인수대금으로 7228억원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납부해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가 없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12.61%를 보유해 2대 주주에 올라있다. 그 외에 국민연금, 외국인, 개인 지분 등이 미미해 금호석화가 보유한 지분 12.61%는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에는 당분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금호석화 최대주주는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로 지분 10%를 보유했다. 박찬구 회장의 형인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과 그의 아들 박준경 금호석화 상무가 각각 6.69%, 7.17%를 보유해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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