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심의위 견제 기능 못하고 한계 노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합병 의혹 등에 대해 검찰 외부 판단을 요청하고 나선지 이틀 만에 검찰이 전격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논란이 생기고 있다.

검찰은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이전에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외부 심의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지난 4일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3명에게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행위)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이 검찰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를 소집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지난 2일이다. 검찰시민위원회 등 수사심의위 소집까지는 넘어야할 절차가 있었지만,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에 반발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그러나 검찰은 이틀 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신병확보를 시도하며 단숨에 판도를 뒤집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순식간에 수사심의위에서 법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사심의위가 잃은 것은 당장의 '화려한 조명' 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장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수사심의위 심의는 의미가 희박해진다.

구속영장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당초와는 심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도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만큼 외부 위원들의 부담감도 한층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법조계에선 이미 수사심의위는 의미가 사라졌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수사심의위 결정은 어디까지나 권고 수준에 그치기에,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자체로 수사심의위가 무력화됐다는 평가인 것이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심의위는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며 "영장까지 청구했기 때문에 수사심의위에서 혐의가 없다고해도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도 "수사심의위 결정에 검찰이 반드시 응해야하는 것이 아니다"며 "영장이 청구된 이상 기소라는 결론이 변하기는 쉽지 않다"고 예상했다.
이 부회장 등의 변호인단도 입장문을 통해 이번 구속 영장청구는 기소를 기정사실화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전날 "수사심의위 절차를 통해 사건 관계인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검토와 결정에 따라 처분했다면 국민들도 검찰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의 수사심의위 소집과 구속영장 청구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사팀이 지난주 이 부회장에 대한 두 차례 소환조사를 진행한 뒤 주말부터 영장청구 여부를 검토했고, 보고라인을 거쳐 4일 최종 확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 이전에 이미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고 검찰총장에게 승인을 건의했다"며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은 사건관계인 신청에 따른 수사심의의 대상이 아니며, 소집 신청으로 수사 절차가 중단되지도 않음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설명에도 수사심의위의가 검찰권을 견제한다는 제도 설립 취지를 상실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보인다. 오히려 제도적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 모양새다.

수사심의위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인 2018년 도입됐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외부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문 총장 시절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김한규 전 서울변회 회장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수사심의위는 현정부 들어 검찰 스스로 개혁 일환으로 도입한 대표작"이라며 "재벌이든 고위공직자든 죄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겠지만, 당사자가 현존하는 제도를 신청했으면 이를 존중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위원회 존립근거를 도외시한 성급한 진행"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타이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