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공정하고 활기찬 시장생태계' 구현을 위한 2020년 공정위 주요 업무 추진계획 발표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될 전망이다. '2020년 공정위 업무 계획'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경쟁 제한 행위나 구독 경제 서비스의 불공정 약관 감시 등 ICT 관련 정책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반면 재벌(대기업 집단) 개혁 관련 정책은 부각되지 않았다. 새로운 내용은 '위장 계열사 신고 포상금제' 정도에 그쳤고, "'일감 나누기' 실적을 정부 부처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유인책도 내놨다. 일감 몰아주기 조사 범위를 넓혔던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5일 공정위가 내놓은 올해 업무 계획은 6대 과제로 구성돼있다. ▲포용적 갑을 관계 정착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 근절 ▲신산업 혁신 생태계 구현 ▲민생 분야 경쟁 촉진을 통한 시장 활력 제고 ▲디지털 시대 맞춤형 정책 추진 ▲자율적인 공정 거래 조성 등이다.

이중 ▲신산업 혁신 생태계 구현과 ▲디지털 시대 맞춤형 정책 추진 항목에 ICT 관련 내용이 집중적으로 담겼다. 주요 내용으로는 ICT, 반도체 분야 독과점 업체의 신규 사업자 시장 진입 저지 행위 시정, ICT 전담 태스크포스(TF) 내 경쟁 사안 및 논의 동향을 파악하는 정책 분과 신설 등이다.

공정위는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전자책(E-book) 등 구독 경제 분야의 불공정한 약관과 온라인 중고 거래 중개업자 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피해 유발 행위를 감시하겠다"고 강조했다. ICT 기업에는 "동의의결(자진 시정) 제도를 적극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반면 재벌 개혁 관련 항목인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 근절에 담긴 정책 중 눈에 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위장 계열사 신고 포상금제나 '지주사 체제 내 손자회사에 대한 공동 출자 금지'는 눈여겨볼 만했지만,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서는 '정부 평가에 일감 나누기 실적 반영'이라는 유인책이 생겼다. "일감 몰아주기 감시에 국세청과 과세 정보를 이용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총수 일가 사익 편취 등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법 개정 노력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일감 몰아주기 조사 대상에 자산 2~5조원의 중견기업을 포함해 재계의 반향이 컸던 지난 2019년 업무 계획과는 다른 분위기다.

당시 업무 계획을 발표했던 김상조 전 공정위 위원장은 출입 기자단 대상 브리핑에서 재벌 개혁 관련 정책 및 현황 설명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개선하는 것이 재벌 개혁의 핵심"이라면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지원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를 넘는 회사와 50%를 초과하는 자회사는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했으며, "하림·태광·대림·금호아시아나의 부당 지원 행위는 상반기 안에 의결을 마무리하고, 조사 중인 6개 기업의 심사 보고서 상정은 올해 안에 끝내겠다"고 조사 일정도 공개했다.

재벌 개혁에 관심이 큰 경제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공정위의 재벌 개혁을 향한 강경한 의지가 옅어졌다는 평가다. 그 배경에는 경제 위축에 따른 부담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새롭게 조사에 착수한 건들이 있을 텐데, 지난 2019년처럼 개별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조사가 어디까지 진행됐고, 언제까지 마무리 하겠다 등 구체적으로 알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작년에 비해 재벌 관련 정책이 간소화했다"고 짚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공시 강화, 정보 공개, 일감 나누기 유인책 제공 등을 시장 친화적인 규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공정위가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 시장에 맡기겠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면서 "경제가 안 좋은 상황이니 '이런 상황에 굳이 기업에 칼을 대야겠느냐'는 여론을 의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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