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심화로 변화보다 안정에 무게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재계 주요 그룹들의 연말 정기 임원 인사 시즌이 돌아오면서 '과감한 변화'냐 '조직 안정화'를 놓고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총수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혁신과 변화가 강조되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다만 경영 악화와 불황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임원 자리를 기존보다 더 줄이려는 경향은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임원을 10~30% 감축하고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들은 CEO와 임원 등 인사 대상자에 대한 평가 및 면접에 돌입했거나 이미 마무리하며 연말 임원 인사를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LG, LS 등은 이르면 다음 주, 삼성, 현대자동차, SK, 한진 등은 다음 달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삼성의 연말 정기 인사는 작년과 비슷한 다음 달 초에 이뤄질 전망이다. 올해도 연말 인사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연말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는 점 역시 안정을 택한다는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도체와 모바일, 가전 등 주요 CEO 교체 인사가 있었기에 올해는 통상적인 수준의 임원 승진 인사가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임원 인사의 경우 실적과 신상필벌이 중요하게 적용될 전망이다. 아울러 삼성은 인공지능(AI)·5G·바이오·전장 등 4대 미래 성장사업 육성을 위해 각 사업을 이끌어갈 글로벌 핵심 인재를 발탁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통상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임원인사를 해왔지만, 올해의 경우 수시인사를 도입한 만큼 연말인사의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수시 임원 인사를 도입한 후 7개월 만에 30여 명의 임원을 교체하는 등 인사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임원인사를 단행해왔다.

최근에도 '플라잉카' 개발을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본부장 출신 신재원 박사가 영입됐고, 닛산 출신의 클라우디아 마르케스가 멕시코법인장으로 선임됐다. 이달 1일에는 부진한 중국 시장 회복을 위해 중국 사업 최고 담당자를 교체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이 즉각적인 인재 기용과 교체를 선호해 이미 많은 인사발령이 이뤄진 만큼 연말인사의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직급별 승진인사와 소폭의 임원인사 정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내달 초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할 예정인 SK그룹도 인사 폭이 크지 않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장동현 (주)SK 사장 등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은 내년 3월 3년간의 임기 만료를 눈앞에 둔 상황으로 이동 가능성도 있지만, 모두 1960년대생으로 비교적 ‘젊은 피’에 속하는 데다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의 신뢰관계, 그룹 내 위상 등을 고려할 때 모두 연임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SK그룹의 올해 임원인사 규모 자체는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7월부터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부사장, 전무, 상무로 구분됐던 임원 직급제도를 폐지하고 임원 직급을 본부장과 그룹장 등 직책으로 바꿨기 때문에 이번 인사에서는 임원 승진인사 없이 신규 임원과 사장단 인사만 발표되기 때문이다.

구광모 회장 체제 2년 째를 맞은 LG그룹도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가 쏠린다.
 
최근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경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기 퇴진해 '세대교체론'이 수그러들면서, LG계열사 5명 부회장이 모두 유임되는 등 '안정'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게 재계 중론이다.

LG그룹은 구 회장을 구심점으로 6명의 부회장단이 보좌하는 그룹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추가 교체는 그룹 체제 안정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또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인 LG전자, LG화학 등이 경쟁사와 소송을 진행 중인데다,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 및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어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 검증된 인물을 계속 기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구 회장이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에서 외부 인사 영입 및 30대 임원 등 젊은 인재를 발탁하는 파격을 선보였던 터라 계열사 등 임원 인사에서도 파격 인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적이 부진했던 계열사의 임원 승진폭에도 이목이 쏠린다.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은 실적부진으로 지난해 수준의 승진 인사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포스코는 다음달 정기임원 인사에 이어 내년 1월 조직개편을 실시할 예정이다. 최정우 회장이 '100대 개혁과제'를 앞세워 그룹사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대대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장의 관심은 대표이사 체제 변화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교체 여부에 쏠려 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최 회장은 장인화 철강부문장 사장과 함께 투톱체제를 이어왔다. 1년 반 동안 조직 안정화 기반을 닦은 최 회장이 미래 먹거리 발굴·육성을 위해 대표이사 체제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차전지소재 등 신사업을 강화하고 있어 대표이사를 늘려 책임경영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 장인화 사장 외에 전중선 전략기획본부장(부사장), 김학동 생산본부장(부사장), 정탁 마케팅본부장(부사장) 등을 사내이사로 두고 있다. 최 회장 외에는 모두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새 인물을 영입할 공산도 크다. 
 
계열사 및 일부 경영진 교체 가능성도 거론된다. 포스코가 변화와 혁신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내부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어서 특정 인사보다는 조직개편에서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화그룹도 연말 인사를 통해 인적쇄신에 돌입한다. 지난 9월 사장단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한 데 이은 후속 임원 인사다. 각 사업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그룹의 중장기 성장을 이끌 인물들로 경영진을 꾸린다는 계획이다. 
 
한화는 태양광과 방산 사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합병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추진해왔다.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던 사업부문을 한데 모으고 지분구조를 단순화해 사업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의 승진 여부도 관심사다. 김 전무는 2010년 1월 그룹 지주사격인 (주)한화에 입사해 2015년 한화큐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지난해에도 3년차 전무인 만큼 승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일단 변동은 없었다.
 
올해는 김 전무가 이끄는 태양광 부문의 대약진으로 '경영능력'까지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전무는 현재 한화큐셀에서 최고영업책임자(COO)로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여기에 한화케미칼이 내년 1월1일부로 김 전무가 속한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는 만큼 김 전무의 역할과 위상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진그룹도 다음 달 임원 인사가 예상되고 있다. 한진그룹은 통상적으로 연말에 임원 인사가 있어 왔지만 경영권 문제와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로 한동안 인사를 단행하지 못했다. 이번 인사의 경우 조원태 회장 취임 이후 첫 임원 인사라 인사 폭이 클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에서 100여명인 대한항공 임원 중 20~30%를 줄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아울러 3남매 중 아직 현업에 돌아오지 못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복귀 여부도 관심사다.

LS그룹도 지난 몇 년 간 주요 계열사 CEO들을 50대로 교체해왔기 때문에 이번 정기 임원 인사규모는 통상적인 승진인사 수준일 것으로 관측된다.

KT는 내년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한창이다. 황창규 현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끝난다. 보통 KT는 12월초 정기임원승진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임원 승진을 위한 평가가 진행되고 있지 않아 미뤄질 여지가 있다.

따라서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이 선임되면, 이후 정기 임원 인사도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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