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회가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513조원에 이르는 '초(超)슈퍼예산' 심사에 돌입했다.

이번 예산안은 사상 처음 500조원을 돌파한 역대 최대 규모로 확장적 재정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여당과 선심성 예산 삭감을 벼르는 야당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예산 전쟁'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문제가 예산 정국과 맞물리면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 초과는 물론 본회의 통과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는 이날 오전 본회의장에서 문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진행한 데 이어 오후에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관련 공청회를 개최하며 예산 정국의 막을 올렸다.

공청회는 국회가 본격적인 예산안 심사를 시작하기 전에 학계와 연구계 등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한 절차로, 이날 공청회에선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진단과 정부 예산안 규모의 적절성 및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국회는 이후 오는 28~29일에는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출석한 가운데 종합정책 질의를 갖는다. 또 이달 30일과 다음달 4일에는 경제부처, 5~6일에는 비경제부처 예산안을 심사한다.

예산안조정소위원회는 다음달 11일부터 가동하며 29일 예결위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513조5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지난달 3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는 올해 예산(469조6000억원)보다 9.3%(43조9000억원) 증가한 금액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이같은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벌써부터 기싸움을 벌이고 있어 처리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여야는 이날 문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놓고도 날카롭게 대립했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 고령화 등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재정이 앞장서야 한다.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며 확장적 재정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또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며 "내년도 확장 예산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적극 공감하며 내년도 예산안의 원활한 통과를 위한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이재정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재정 확대는 경제하방 위험성에 대응할 마지막 카드"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빚더미' 예산이라며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예산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된 재정낭비 예산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이번 시정연설로 문재인 정권이 기댈 것은 세금뿐이란 것이 분명해졌다"며 "한국당은 적자국채까지 발행해 세금 퍼쓰자는 초수퍼예산, 미래세대에 빚더미만 떠넘기게 될 정부예산을 꼼꼼히 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여야는 특히 일자리 예산과 남북협력기금, 보건복지 예산을 두고 정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1.3% 증가한 25조8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 보건복지 예산은 12.8% 증액된 181조5000억원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국면에서 남북협력기금은 올해보다 10.3% 증가한 1조2000억으로 편성됐다.

예결위 한국당 간사인 이종배 의원은 "통계 왜곡형 단기 일자리 등 소득주도성장 예산은 물론 선거용 선심성 퍼주기 예산을 찾아내겠다"고 했고, 정용기 정책위의장도 "가짜 평화 예산, 북한 퍼주기 예산을 과감히 삭감하겠다"고 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확장재정 내용은 복지 확대에 방점이 찍혀있다"며 "복지 재정만 늘어날 경우 급격한 고령화와 심각한 저출산 속에서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여야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법정시한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일 30일 전까지 본회의에서 정부의 예산안을 확정해야 한다. 회계연도 개시일은 1월1일이므로 전년도 12월2일까지는 다음해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지만 여야는 '동물국회'를 되풀이하며 법정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특히 올해는 공수처 설치, 선거제 개혁 등을 놓고 여야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라는 오명을 남긴 지난해(12월8일)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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