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人和)의 LG가 달라졌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뚝심 경영으로 대표됐던 LG는 지난해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안팎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구광모호 LG의 키워드는 '실리주의'와 '미래'로 축약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재편, 새 동력과 미래 인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행보는 LG의 체질을 바꿔나갔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오는 29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구 회장은 지난해 만 40세의 나이로 회장에 취임하며 별도의 취임식 행사를 갖지 않았다. 대신 지주회사 경영현안들을 챙겨나가며, 미래 준비를 위한 경영 구상에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광모 체제에 들어선 LG의 변화는 사업 재편 과정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해외 스타트업에 대한 잇단 투자, 형식을 깬 파격 인사, 다소 경직돼 있었던 조직문화의 개선도 변화의 근거다.

◇사업별 '선택과 집중' 가속…경영체질 개선 본격화

구광모호 LG는 계열사의 사업 지속성을 위해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우선 그룹 내 비주력 사업의 가지치기와 과감한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LG전자는 수처리사업 매각을 진행 중이며, LG그룹은 지난 2월 소모성자재구매(MRO) 사업을 영위하는 서브원 경영권 매각을 마쳤다.

그룹은 연료전지 연구개발 기업인 LG퓨얼셀시스템즈 사업을 청산 결정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LG이노텍도 스마트폰용 무선충전 사업 정리를 검토하고 있다. LG전자의 수익성을 갉아먹던 스마트폰 사업의 생산 거점도 베트남으로 옮긴다.

비주력 사업부문에 대해 과감한 솎아내기 작업을 하는 한편, 신성장 동력과 미래 인재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고 있다. 굵직한 규모의 인수합병(M&A)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결정은 더욱 견실한 수익기반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LG는 벤처 투자사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현재까지 미국 스타트업에 약 1900만달러(약 216억원) 이상 투자했다. 주로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바이오·소재,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 등의 유망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했다.

◇'인재풀' 위한 파격 행보…미래·혁신에 방점

 구 회장은 신사업을 위한 미래 인재 유치에도 직접 뛰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재 채용 행사 'LG 테크 컨퍼런스'에 참석, 행사에 찾아온 북미 지역의 석·박사급 인재들을 만났다. 특히 지난 2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테크 컨퍼런스는 구 회장의 올해 첫 대외 행보였다.

아울러, 신속한 사업재편의 일환으로 형식을 깬 '파격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입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3M 수석부회장 출신이며, 홍범식 (주)LG 경영전략팀 사장은 베인앤컴퍼니 대표로 재직한 바 있다.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인 김형남 부사장은 자동차부품팀장으로 발탁됐다.

이 같은 '외부수혈'은 그룹 전통인 순혈주의를 타파하는 동시에 구광모 회장의 실용주의적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됐다. 미래 준비라는 그룹의 최대 현안에 집중하며 혁신인사를 통한 '뉴 LG'의 윤곽을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내부 혁신도 활발…수평적 조직문화로 탈바꿈 노력

LG전자는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연구개발(R&D)캠퍼스에 '살롱 드 서초'를 열었다. 직원들이 소속 직급과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LG테드 ▲문화공연 ▲기술 세미나 등도 진행한다.

수평적 조직문화도 전사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기존 5단계의 직급체계는 직책과 능력, 성과 중심의 3단계로 간소화됐다. 격식을 떠나 자유롭고 유연한 근무를 위해 복장자율화도 도입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회의 없는 날'로 정하고 업무 몰입도 높이기에 나섰으며, 사내 웹툰인 'LG인 품격 생활가이드'도 연재한다.

기존에 400명이 모여 분기별로 개최된 임원세미나도 관련이 있는 임원들을 주로 초청해 100명 미만이 참가하는 월별 포럼 형식의 'LG 포럼'으로 전환했다. 구광모 회장이 연 2회 직접 주재하는 사업보고회도 일방적인 회장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회장과 임원 간 깊이 있는 토론의 시간으로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변화 속 '정도경영' 여전…고객가치 혁신으로 발현

한편 구광모 회장 체제가 안착한 이후에도 LG 특유의 '정도 경영'은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4세 체제에 들어선 LG는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상속세 납부와 일감몰아주기 논란 해소에 집중해왔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별세한 구본무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 자회사를 팔아 9215억원의 상속세 1차분을 마련했고, ㈜LG 주식의 49.9%를 용산세무서 등에 담보로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오랜기간 경영 승계를 위해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고,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없었으므로 상당한 상속세에도 불구 납부엔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LG그룹 지주사 (주)LG는 보유 중인 LG CNS의 지분 37.3%를 매각하기 위해 매각주관사로 JP모건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말에는 LG 총수 일가가 보유했던 판토스 지분 19.9%를 매각했다. 선제적인 지분 매각으로 향후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해 불거질 수 있는 오해를 사전 차단한 셈이다.

이를 통해 정도경영을 이어가는 한편, 고객가치란 이념에 충실한다는 게 LG그룹의 설명이다. 구 회장은 올초 개최된 'LG 새해모임'에서 “지난해 6월 LG 대표로 선임된 후 그동안 쌓아온 전통을 계승·발전 시키는 동시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변화할 부분과 LG가 나아갈 방향을 수없이 고민해 보았지만 결국 그 답은 ‘고객’에 있었다”며 고객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구 회장이 제시한 기준은 ▲고객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것 ▲남보다 앞서 주는 것 ▲한 두 차례가 아닌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 등이다.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체제의 LG는 다소 보수적이었던 그룹의 이미지를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다"며 "실용주의적인 혁신이 진행되는 가운데 창업주부터 이어진 정도경영의 이념은 이어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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