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택트렌즈 60개국 수출, 2천만불 수출탑 달성

노시철 인터로조 대표이사


콘택트렌즈를 60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콘택트렌즈 전문기업 인터로조의 노시철 대표이사를 만났다. 주방용품 무역을 중개하던 그가 콘택트렌즈 업체를 창업해 굴지의 회사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 인터로조(interrojo)는 어떻게 만들어진 이름인가?
‘~콘’ 과 같은 이름은 웹사이트 도메인도 이미 선점한 사람들이 있는 상태였다. 
로조는 스페니인어로 ‘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오호’로 발음된다. 스페니쉬 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친숙하게 우리 브랜드를 받아들인다. 
그런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회사도 잘 되는 것으로 봐서 좋은 이름을 사명으로 쓴 것 같다.

- 첫 직장이 대우실업이었는데 어떤 일을 했나?
주방용품 등을 주로 판매하는 무역회사였다. 약 7년반 정도 근무했었다. 결혼 전날까지 혼자 남아 야근할 정도로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했다.

- 87년 두류실업을 창업했다.
주방용품을 다루는 일이었다. 대우실업에서 하던 일이었다. 내 고향이 경남 함흥으로 지리산을 계절적으로 부르는 이름 중에 두류산이라는 명칭이 있었다. 그래서 명칭을 두류로 정했는데 과거 국내 항공기 중에 중국 취항노선이 없어 홍콩 등지에서 중국 비행기를 탔었다. 그때 항공권 티켓을 보니 1등석을 두류로 부르더라. 그래서 참 작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first class’라는 의미에서 보면 두류실업도 멋진 이름을 가졌다. 

- 사업에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세상에 직장인 스타일, 사업가 스타일은 나눠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직장생활에 충실하다보면 사업가로서의 준비도 자연스럽게 된다고 본다. 처음에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내가 사업을 하면 현재의 위치에서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효율적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대우실업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다보니 회사 내 적폐가 상당했다. 대기업 특성상 인사 순환이 계속됐다. 주방용품을 전혀 모르는 부서장이 취임했다. 그러면 각 주방용품과 조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반복됐다. 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주체가 아니라 타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무역업무가 주 업무다보니 부서장을 데리고 여러 지방 공장을 돌며 부서장을 소개하는 일을 몇 년마다 계속 되풀이 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회사에 여러차례 건의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 큰 회사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가진 전체 에너지 가운데 50%는 성장에, 나머지 50%는 조직 유지를 위해 쓴다는 판단을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국내조직에서 해외지사로부터 도움을 전혀 필요하지 않는데 해외지사를 운영하고 해외 지사장 월급을 주고 하는 행위 등 모든 것들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 처음 창업했던 두류실업은 어땠나?
두류실업은 위기다운 위기조차도 없었다. 아주 평탄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한국이 주방용품의 글로벌 주요 공급자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두류실업을 하는 첫 3년간 밤 11시에 퇴근했다. 유럽 그 가운데서도 독일과 주로 거래를 해는데 그 때 당시에 이메일이 없었다. 당시 모든 문서 송수신은 텔렉스를 이용해 진행됐는데 독일 거래처 퇴근시간이 내 퇴근시간이었다.

- 굳이 그렇게 퇴근 시간까지 맞출 필요가 있었는가?
무역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산업이다. 자체적인 제조공장을 가지지 않고 남의 물건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 무역회사 입장에서는 제조업체 사이에서 서비스를 잘해야 한다는 기대치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실수에도 상당히 민감했다. 

- 주방용품을 하다가 어떻게 콘택트렌즈를 하게 됐나?
기술집약적이고 미래집약적인 제조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주변에 꾸준히 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 인수 제안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내게 소개시켜줬다. 그런 가운데 국내 다른 콘택트렌즈 연구진들이 회사를 나와 회사를 설립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 사람들은 기술력은 있었지만 경영능력, 자본이 없어서 파트너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파트너가 됐다. 그들은 지분 50%를 요구했다.

- 지분 50%면 기술력이 있다해도  과한 것 아니었나?
사실 그랬다. 그러나 당시 콘택트렌즈에는 독보적인 기업이 없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원료 부분에 포뮬레이션에 강점이 있으면 다른 기업들은 렌즈 제조 설비나 렌즈 디자인에 강점이 있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또 일에 발전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봤다. 그러면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 인터로조 설립 후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는 자본금 10억내외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갔다. 그렇게 되자 은행이 증자를 요구했다. 그 부채가운데 상당액이 내가 회사에 빌려준 돈이었다. 은행에서는 그 부채를 증자하면 부채비율이 크게 줄어든다는 이유를 들어 계속 증자를 요구했다. 그러나 내가 이 증자를 거부했다.

- 왜 증자를 거부했나?
파트너가 되기로 한 사람들의 지분 50%를 주기로 약속이 돼 있었는데 이렇게 증자를 결정할 경우 내 지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회사 내 파트너들의 지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증자를 거부했다. 다만 계약조건을 하나 추가를 했다. 상장전 회사를 나갈 경우 받았던 지분을 반납할 것이라는 문구를 계약조항에 넣었다. 왜냐면 나간 사람이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경우 남아있는 사람은 계속 고생하는데 나간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큰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사람은 나가면서 지분을 반납했다. 그래서 내 지분율이 조금 올라갔다. 그때 증자를 거부한 덕에 나와 함께 시작한 파트너들은 큰 부자가 됐다. 그리고 아직도 회사에서 신뢰관계를 형성하며 같이 일하고 있다.

- 지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다. 
어떤이에게 지분을 주는 것은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조건은 상호간의 신뢰를 쌓는 것이다. 신뢰라는 것은 내가 스스로 먼저 모든 면에서 보여줘야 한다. 개인적인 욕심을 드러내면 안된다.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신뢰가 쌓인다.

- 그래서 대표님은 어떤 신뢰를 보여줬나?
무역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기 때문에 해외 판매 능력이 있었다. 그 해외 판매 능력을 보여줬다. 내가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물은 해외 판매였다. 예를 들어 내가 어디 가서 이쪽분야 전문가, 박사 등에 관련분야 얘기를 듣고 와서 파트너들에게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면 사기저하로 이어질 뿐이다. 그런 행동들로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없다.

- 시장보고서에 의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콘택트렌즈 시장의 규모는 올해 예상되는 연간 76~77억달러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인터로조의 위치는?
올해 600억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0.5~0.7%정도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기술력 수준으로는 우리를 콘택트렌즈 산업내에서 글로벌 5대 기업 수준으로 보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2위업체로 올라섰다. 

- 내수와 수출을 비교하면 어떤가?
내수의 경우 기존의 국내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침투해 사실 틈이 없었다.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해 점유율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충이 따랐다. 그러나 해외수출의 경우 각 나라별로 경제수준에 따라 안경렌즈, 1년짜리 세척렌즈, 3개월 렌즈, 1개월 렌즈, 원데이렌즈 수요가 다양하다. 그러한 틈새공략을 잘하면 어렵지 않다. 처음부터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왔고 그런 신뢰를 쌓으면서 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쉬웠다.

- 국내판매에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안경원의 기존 관행이 가장 힘들었다. 외국산이 비싸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꾸준히 심어줬다. 그렇게 외국산을 판매하게 되면 안경원의 마진이 훨씬 더 좋았다. 또 렌즈 업계의 나쁜 관행 중에 하나가 위탁판매였다. 안경원에 공급해놓고 제품이 팔릴 때까지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가 상당히 많이 진행돼야 한다. 또 국내 유명 브랜드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국내 진출한 외국 브랜드의 경우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는 것도 어려움 중에 하나 였다. 그런면에서 수출은 대금 수령 후 선적해주는 등 오히려 편한 면이 많았다. 

- 어려운 국내시장에 인터로조가 국내 2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광고모델로 수지를 고용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예를 들어 자사 브랜드 가운데 원데이렌즈를 만드는 클라렌이 직접 소비자에게 렌즈를 팔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1차 고객은 안경원이고 2차 고객은 소비자가 된다. 법적 제한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도 직접 소비자에 판매할 수 없다. 
우선적으로 안경원에서 인터로조에서 취급을 해줘야 했다. 안경원에 입점하더라도 소비자 반응이 안 좋으면 제품을 권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경원에게는 타 제품보다 마진율을 높여주고 소비자에게는 인식을 재고할 수 있을 정도의 품질을 만들어냈다.

- 어떻게 마진율을 타 경쟁사보다 더 줄 수 있었나?
외국회사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마케팅 비용으로 쓴다. 그러나 인터로조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데신 판매자인 안경원에 더 많은 마진율을 보장해 줬다. 또 소비자에게도 인터로조 제품 선택에 가격혜택이 갈 수 있도록 했다.

- 어떤쪽으로 R&D가 진행돼 큰 성과를 거뒀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사람들은 끼지 않는 사람보다 불편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는 눈에 있는 수분이 증발하고 추가로 안구에 수분공급이 차단되면서 건조되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대기와의 접촉이 발생하면서 눈에 있는 수분이 증발하는 것이다. 인터로조의 경우 HA보습제를 렌즈에 접목시켜 콘택트렌즈 착용에 따르는 피로도를 최소화 했다. 

- 경쟁업체와 가격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바슈룸같은 글로벌 1위 기업이 덤핑을 할 가능성은 없는가?
덤핑을 치지 않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콘택트렌즈 제조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 모두 이익을 많이 내고 있다. 서로 이익을 많이 내는 상황에서 덤핑을 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익이 나지 않으면 R&D를 할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미래를 봤을 때 소비자에게도 손해이고 기업 역시 미래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덤핑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지금까지 해외에서도 출혈 경쟁 사례는 없었다. 

- 다양한 마케팅을 했다.
TV광고는 JTBC, 온스타일, TVN, 등을 통해 광고를 했다. TV에 광고를 한 것은 단순히 안경원에 어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도 ‘TV광고 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서였다. 사실 가장 효과가 컷던 것은 지금 모델로 활동 중인 수지 포스터와 배너를 안경원에 배포한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수지 얼굴을 쳐다보면서 자사 브랜드가 광고 효과를 거뒀다. 

- 현재 내수 40%, 수출이 60%다. 
지금 유럽, 유럽내에서도 독일이 가장 큰 시장이다. 그러나 향후 몇 년내에 일본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본다. 그 다음이 중국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자면 일본에서만 연간 수출 5000만불을 달성이 가능 할 것이라고 본다.

- 반한 감정이 심한데 수출에 문제가 없나? 더군다나 일본에는 ‘호야’라는 콘택트렌즈 전문 브랜드가 있다. 
수출할 때는 우리 제품에 분명히 ‘메이드인코리아’가 표시된다. 그러나 일본은 콘택트렌즈, 소프트렌즈에 경합할만한 경쟁업체가 없다. 호야는 주문자 생산방식을 표방하는 방식으로 소프트렌즈를 대량생산하는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미국의 콘택트렌즈 글로벌 기업 가운데 하나는 전체 이익의 50%를 일본에서 올리고 있다. 일본 시장이 그만큼 좋다. 다만 인허가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우리의 경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쓰나미 재해때 협상을 시작한 기업이 있는데 지난해 말에 타결됐다. 

- 중동에서 매출 13%가 나온다. 특이하다. 무슨 이유인가?
여자들은 누구나 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다. 중동여자들은 히잡을 착용한다. 그러나 히잡을 쓰면 눈만 밖으로 나온다. 중동 여자들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살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강한 색조화장, 스모키 화장을 한다. 그것을 매칭 시키는 컬러렌즈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것이다. ‘벨라’라는 브랜드로 두바이 등지에서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 브랜드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주변에 브랜드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를 관리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온 세계에 자사 브랜드 ‘클라랜’ 광고판을 세운다고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OEM방식이든 ODM방식이든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가격경쟁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브랜드는 중요하지 않다. 유럽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독일에 연간 1000만달러 수출은 OEM·ODM으로 진행되고 있다.

- 브랜드 관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일관성 있는 가격정책, 품질관리, 그리고 품질에 대한 고객 불만이 나왔을 때 신속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느냐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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