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2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리는 국제경쟁정책워크숍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통해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단순히 경제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하는 등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언급했다.

미리 배포된 대기업집단과 경쟁정책(Conglomerates and Competition Policy) 발표문 내용을 보면 김 위원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벌의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상위 10대 재벌의 자산총액이 국내총생산(GDP)의 80%에 달함에도 이들에 의해 직접 고용된 사람은 3.5%에 불과하다"며 "재벌 성장이 한국 경제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고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은 고용의 대부분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의 성장마저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괴리를 언급하며 "오너일가만의 이익을 위한 사익추구행위를 하게 된다"며 "경영권이 2세를 지나 3세로까지 승계되며 재벌 3세들은 창업자들과 달리 위험에 도전해 수익을 창출하기보단 사익추구행위를 통한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어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발전을 저해한다"고도 비판했다.

또 "선진국에선 시장메커니즘이나 상법·회사법 등의 내·외부 감시 장치가 실효적으로 작동해 이런 사익추구행위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으나 한국의 시장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에 경쟁당국인 공정위가 본연의 경쟁정책 뿐 아니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까지 규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번 유럽 출장에서 오는 14~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제19차 독일 국제경쟁회의에 참석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디지털 글로벌 기업들의 독점 문제를 논의한다. 독일 국제경쟁회의는 경쟁법 분야의 대표적 국제회의다.

'글로벌 시장지배력 확대와 경쟁당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회의에선 초국적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영향력이 이미 국경을 허물어 소비자들의 삶에 깊이 침투, 기존의 경쟁법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최근엔 특히 빅데이터를 이용한 개인별 가격차별, 알고리즘 답합 등 과거엔 없던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행위도 출현하는 상황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 자리서 각국 경쟁당국이 이 문제에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11일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라이텐베르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경쟁총국장과, 15일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문트 독일 연방카르텔청장과의 양자협의회에도 참석한다.

특히 최근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장관이 EU내 핵심 거대기업을 만들겠다며 발표한 '21세기 EU의 산업정책을 위한 독일·프랑스 공동선언문' 내용에 대해 EU와 독일 당국의 입장을 직접 들을 계획이다.

이 공동선언문에는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앞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의 초대형 철도 합병안을 EU 집행위원회가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EU의 심사기준이 자국 산업 경쟁력 확보에 방해가 되고 있단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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