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을 부추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정부의 현 주소>

2016년 삼성전자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갤럭시노트7을 250만대 전량 리콜 했다. 배터리 발화 문제였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배터리 교체가 아닌 제품 회수를 선택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림픽 비인기 종목에 지원하다가 2017년 쑥대밭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캔다면서 불똥이 튄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정쟁거리로 되어버렸다.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공사를 하던 비정규직 젊은이가 공사 중에 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사건의 본질은 서울교통공사의 안전관리 소홀인데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노동계의 주장대로 비정규직문제에 탓을 돌리며 책임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안전사고의 원인을 외주에 돌리고 정규직이 위험한 일을 맡지 않으려한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서울교통공사노조의 친인척 특혜 비리가 터졌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와 노동계의 두 얼굴이다.

국민연금은 노후생활을 위해 국민이 맡긴 돈으로 정부가 잘 관리하고 수익률도 높여야 한다. 국민과 정부를 묶는 국민연금 사회계약의 골자이면서 정부의 책무다. 급속한 고령화로 국민연금이 고갈할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에 국민은 사회계약이 유지될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연금고갈을 막기 위해 국민의 부담금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의 관리와 운영이 난맥상이고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높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스튜어드십 코드 즉 기업집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데 국민연금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까지 높이는 역할을 떠맡아야한다는데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면 국민연금의 부실화로 정부의 책무성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책무성 결여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국민연금과 기업 집사>

국민연금의 안정성과 수익률 제고라는 본연의 목표를 도외시하면 정부가 사회계약을 파괴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을 수익률이 높은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국민연금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본연의 목표를 무시하는 것이다. 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도록 만드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각종 비용만 키우고 국민연금의 부실화를 야기하기 십상이다. 이런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기업일수록 경영 성과가 높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 기업을 선별해 여기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기업이 성과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상황에 국민연금이 구태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도록 만드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국민연금은 경영 성과가 좋은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정석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다. 정부의 고유 업무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도록 세제 지원 등으로 환경을 만드는데 있다. 정부가 고유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정부 실패가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경영에 관여한다는 것은 기업을 부실화시키고 국민연금도 부실하게 만들어 정부 실패를 스스로 키우기 쉽다.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국민연금을 등에 업고 기업 집사가 되어 멀쩡한 기업에 끼어들면 국민연금이나 투자한 해당 기업이나 모두에게 손실만 입힌다. 국민연금공단은 추천한 기업 집사가 경영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할지 모른다. 투자 기업이 주인이 없다면 기업 집사는 주인 노릇하고 집사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기업은 순간에 거들난다. 더군다나 추천한 기업 집사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면 정부도 위기에 빠진다.

<사회계약과 책임의 균형>

사회계약은 권리와 책임, 급부와 반대급부가 균형을 잡을 때 유지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조합 등 경제 주체의 책임의 균형은 사회계약의 유지에 필수적이다. 사회계약은 정부가 관리하며 책임의 분담에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정책,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정책 등에 따라 사회계약의 균형이 달라진다. 좋은 정책은 사회계약의 수준을 높이고 나쁜 정책은 사회계약을 위험에 빠뜨린다. 선진국은 기업과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을 자제한다. 정부의 개입은 경제 주체들 사이의 불신을 초래한다. 불신은 자유로운 거래관계를 방해하고 경제성과를 떨어뜨림으로써 사회계약을 후퇴하게 만든다. 노사관계는 더욱 그렇다. 노사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자율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정부는 노사자치주의를 존중한다. 기업은 물론 노동계도 정부의 개입을 경계한다. 이런 원리에 비추어보면 국민연금을 동원한 스튜어드십 코드나 노동이사의 도입은 사회계약의 균형을 깨뜨리고 노사정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은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반면, 중소기업에 대해 보호를 강조한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보다 보호에 치중한다. 노사관계도 사용자에게 의무를 강조하는 반면, 노동조합에게 권리를 강조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업주뿐 아니라 구성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기울어진 정책은 노사의 협력과 책임 분담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모순 때문에 대기업은 노동조합의 파업 위협 때문에 임금인상과 고용보호를 강화하고 그 부담을 협력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게 전가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균형의 실패로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을 왜곡시켰다. 그러나 정부는 힘의 불균형을 방치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동원한 스튜어드십 코드나 노동이사의 도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더 왜곡하고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이 더 악화되도록 만들게 된다.

노사관계 뿐 아니라 정치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왜곡시켰다. 한국의 정치는 국가적 행사나 대형사고 등이 발생하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차원에서 사회 공헌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전통처럼 자리 잡으면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 공헌으로 인식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사회 공헌은 정부의 지원요청을 받으면 대기업은 꼼짝없이 돈을 내야 하는 이른바 준조세가 되었고 정경유착이나 관경유착의 부패를 야기하는 고리이기도 했다. 사회적 책임을 사회 공헌으로 인식하는 현실 때문에 국민연금을 앞세운 스튜어드십 코드와 노동이사제도 등은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간섭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그만큼 키우게 된다. 공기업의 기관장이나 사외 이사는 이미 정권의 전리품이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정치 풍토에 비추어보면 민간 기업도 정권의 전리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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