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6000평·예산 6억원 확보 불구 학교 인가 무산위기”

지난달 24일 여의도 방송가 뒤편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최근 보디빌딩으로 큰 화제가 됐던 ‘인순이’를 만났다. 아쉽게도 이 인터뷰의 대상은 가수 ‘인순이’가 아니라 김인순 해밀학교 이사장이다. 그와의 만남은 그가 지난달 10일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UWW리더십라운드 자선라운드테이블-서울총회에서 아너소사이어티 연사 중 한명으로 연단에 오른 것이 계기가 됐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소설 <거리의 변호사>의 주인공 ‘마이클 브룩’을 빼닮은 그의 소설 같은 헌신적인 삶의 얘기는 기자를 매료시켰다. 

그는 학창시절 한 달에 한번 학교로 오는 버스를 타고 한국 펄벅재단으로 갔다. 그 곳에서 흰 봉투에 학비와 약간의 생활비 담긴 봉투를 받으며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매 계절이 바뀔때마다 후원자에게는 감사의 편지를 쓰며 어렵게 후원을 이어갔다. 그때 한국 펄벅재단의 도움이 너무나 감사했다는 그는 그렇게 중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혼혈이란 주홍 글씨를 뒤로하더라도 중학교뿐인 졸업장으로 그가 스스로 세상을 개척해나간 스토리만으로도 많은 이들에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일상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위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나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 재벌 2·3세들의 이야기와는 대조된다. 남들만큼 인정받기 위해 120%, 150% 노력을 했다는 그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35% 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 길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수많은 길을 돌고 돌아 왔던 아픈 과거가 떠올랐다. 대부분의 다문화가정을 배경으로 한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아버지는 한국에 있으면 한국인, 어머니도 자기나라에 가면 그 나라 사람이 된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뭔가’ 라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는 부모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며 탈선의 구실을 제공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통해 정서적 치유를 해야 그들이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학교설립을 위해 뛰어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벌써 5년여 전의 일이다. 2011년 1월 여성가족부를 통해 대안학교 건립을 문의하고 인순이학교준비위원회를 결성한 것이 2011년 4월. 그리고 2013년4월 ‘비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해밀학교는 문을 열었다.
학교는 세워졌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교사 임금을 비롯한 운영비를 계속 조달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미 상당한 사재출연을 통해 학교건물과 부지, 기숙사를 확보한 상황이었다. 더 많은 행사와 연예활동을 하면 다문화 아이들과 ‘학교밖 아이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버텨왔다.
학교는 그렇게 우리가 그동안 인순이의 음악과 이미지를 소비했던 돈으로 만들어졌다. 또 지방공연을 위해 몇 천 킬로를 이동하며 벌어들인 돈은 고단한 삶의 보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다문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쓰였다. 학교는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애초 학교를 세울 때 후원이란 개념조차 생각지 않았다는 그는 다문화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더 큰 미래를 설계했다. 현재의 해밀학교는 비인가학교다. 인가학교가 되면 교육부 예산으로 교직원 임금, 운영비, 기숙사 건립 등을 할 수 있다. 교육 환경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인순이 개인적인 사재출연에 사실상 거의 전부를 의존했던 해밀학교는 인가학교가 되면 자생력을 가지게 된다. 그의 연예인 활동이 끝나도 학교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교직원의 임금과 학교 운영비로 쓰여지던 그의 돈은 더 좋은 교육환경를 제공하는데 쓰여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졸업장에 있다. 해밀학교에서는 3년간의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지만 그 졸업장으로는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없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다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아직까지 단 한명도 검정고시를 떨어진 학생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해밀학교 아이들이 손에 쥔 검정고시 합격증서의 이면에는 한국사회 일반적 통념에서 ‘단체생활 부적응자’라고 인식될 수 있는 또 다른 낙인이 찍혀있다.
그들은 학교라는 테두리안에서 선생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수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졸업장을 이 사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밀학교가 인가학교가 된다면 학생들에게는 가고 싶은 학교, 학부모님은 보내고 싶은 학교, 지역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학교로 거듭날 수 있다. 

한국의 ‘디바’로 칭송받는 가수 인순이는 한국 펄벌재단에 후원을 받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1208은 한국 펄벅재단에서 부여한 후원번호다.

- 사방에 일반 공립학교가 널렸는데 다문화 대안학교가 왜 필요한가?
한국의 다문화가정에서는 외국출신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를 아이에게 쓰는 걸 용납치 않는다. 후진국의 언어라는 편견도 있고 아버지가 못 알아드는 말을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결국 그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기껏해야 ‘먹어’, ‘맛있어?’ 정도의 얘기만 듣고 자라게 된다. 한국의 가정을 상상해 보라. ‘이건 이래서 맛있고 이건 제철과일이라 이러쿵 저러쿵 해서 훨씬 더 맛있다.’는 설명을 해준다. 다문화아이는 왜 맛있는지 모르고 ‘맛있다’하니 맛있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 나이에 익혀야 할 표현과 언어를 배울 기회를 상실한다. 언어적 능력부족으로 대인관계가 차단되고 학습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면 자신의 가정적 배경을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벽을 세워 세상과 자신을 차단한다. 결국 학교 밖으로 나간 아이들은 이 사회의 잠재적인 문제아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은 사회적으로 인식 개선이 많이 돼 다문화가정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주지 않냐고 반문한다. 생각해보라. 이미 어릴때 또래집단으로부터 상처받으며 큰 아이가 정서적 치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갑자기 동등한 대우 해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그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한 것이다.

- 해밀학교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은 어떤 변화를 보이나?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문을 두드릴 때는 대부분 이미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들어온다. 일반학교에서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이 놀림감이 되고 상처를 받아 말을 닫았던 아이들이 이곳에서는 그런 발음으로 선생님과 농담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순간 여기는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속에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차단됐던 대인관계의 문이 열리게 된다. 정서적으로 치유가 되면서 대인관계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언어실력이 늘고 나중에는 학습태도와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이 과정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 해밀학교의 목표는?
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은 크게 해보지 않았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마음에 굳은살을 갖고 탄탄하게 자라서 대한민국 어디서든지 ‘대한민국인’이란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솔직히 내 자식도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남의 아이를 데려다가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이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만족한다. 그것이 내가 학교를 설립한 이유다. 

- 다문화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실제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동남아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체 사장님들은 해밀학교 아이들이 빨리 크길 바라고 있다. 현지공장의 운영책임자를 한국인으로 할 경우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관리가 잘 안된다. 현지인을 관리자로 채용할 경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들편에서 일을 처리한다. 
그런데 다문화가정 출신의 아이가 이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들의 문화, 언어를 이해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다. 

- 인가학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어느 정도(구체적으로)?
우선적으로 인가학교가 되기 위해선 부지. 교실, 교직원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부지는 6000평을 이미 자체재원으로 마련했다. 학교시설을 건립하는데는 총 12억원의 예산을 필요로 한다. 해밀학교는 정부 예산을 6억원 확보했다. 문제는 자체적으로 6억원의 자비용 부담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미 배정된 6억원의 예산은 소멸된다. 그 기한이 올해말까지다. 이 예산은 내년으로 이연되지 않으며 해밀학교에 다시 재배정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6억원의 돈을 올해말까지 마련하지 못하면 인가학교로 가는 길은 더욱 어려워진다.

- 현재 후원금 모금 상황은?
2300만원이 전부다. 인가학교가 되기 위해선 나머지 5억7700만원을 올해 말까지 마련해야 한다.  

- 다문화아이들에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도 다문화, 탈북문제에 앞장서겠다는 공언을 여러 차례 했다. 후원을 약속한 사람은 없었나?
사실 지난번 UWW리더십위원회 자선라운드테이블-서울총회에서 아너소사이어티 대표 연설자로 연설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올 때 최신원 SKC회장님께서 내 귀에다 대고 “내가 도와줄께”라는 말씀을 직접 하셨다. 평소 개인 사재를 출연해 상당한 액수를 기부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솔직히 우리는 회장님의 말씀에 상당히 고무돼 있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가 지나가면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진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연말까지 좋은 뜻을 가진 기업들을 접촉해보겠다. 인가학교만 되면 다문화 아이들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기관이 탄생된다. 원래 계획했던 중·고등 통합과정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이 든다.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다.

- 해밀학교를 후원하는 방법은?
해밀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또는 해밀학교 사무국에 직접 전화(070-7837-2239)로 전화를 하면 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기부할 때 “해밀학교를 후원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이순(耳順)이 가까워진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맑은 영혼은 기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15세처럼 순수한 웃음은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순이의 노래를 들으며 살아왔다. 흑인 특유의 소울을 가진 그가 한국말로 부른 노래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때로는 그의 노래는 큰 위로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희망이 되기도 했다. 
기자 역시 공군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티비나 라디오에서 하루 종일 인순이와 조PD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친구여’만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그땐 그 노래가 기자를 위로했다. 그렇게 그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기자는 이제 대한민국의 모범시민이 됐다. 
많지는 않지만 꼬박꼬박 세금을 납세하고 있고 투표에 참여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에 참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근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중이며 대한민국 환경을 위해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 환경보전의 의무도 성실히 이행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기자와 같은 모범시민이 계속 나와야 대한민국이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태어난 수많은 다문화 아이들은 외모차별과 언어장벽에 이른 나이에 좌절하고 있다. 정체성 혼란과 정서적 불안을 바로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직업을 통해 모범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2010년 병역법 개정을 통해 그들은 그동안 면제 받았던 국방의 의무도 수행하게 됐다. 최소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그들을 향한 차별도, 특혜도 없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그들을 여전히 차별받고 있고 그 차별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그들을 몰아내고 있다. 
인순이가 가진 ‘거위의 꿈’은 황금알 가지기 위한 허황된 꿈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또 다른 모범시민을 만들어내는 ‘평범한 알’이다. 그러나 이 사회가 조금만 힘을 보탠다면 대한민국의 향후 100년을 책임질 ‘황금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의미 없이 소비되는 1만원짜리 한 장이 해밀학교를 향한다면 한 아이의 미래가,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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