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도 도원경 복숭아꽃처럼 풍성히 살아나길”

임근우 강원대 미대 교수

“요즘 나의 그림은 도원경(桃源境) 속에 푹 빠져 있다”

임근우 강원대 미대 교수의 고백이다. 전업화가에서 국립대 교수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림 세계는 변함없이 ‘유토피아’를 향하고 있다. 
기이한 형태의 동물이 이고 선 복숭아나무와 만개한 도화가 무리를 이루면서 발하는 분홍의 향연. 100호 규모의 거대한 캔버스를 마주 대하고 서 있으면 어느새 무릉도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의 바탕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차용했다. 이상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는 안평대군이 거닐었던 꿈의 도원(桃園)을 현대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명예를 상징하는 긴 목을 가진 기린, 재물을 뜻하는 풍만한 몸의 젖소, 그리고 권력의 상징인 강건한 발을 가진 말 등 세 가지 동물을 조합한 ‘이상체(理想體)’는 임 교수가 우리를 고고학적 무릉도원으로 이끌고 가는 매개다. 
임 교수는 “내 그림은 복숭아꽃을 머리에 피운 기린, 젖소, 말의 이상형 동물이 무릉도원을 부유하며 꿈꾸는 이 시대 행복기상도”라며 “그래서인지 유토피아 기상도를 그리는 나는 절로 신이 난다”고 표현했다.
임 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고고학적 기상도에 천착했다. 애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동아시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경기도 전곡 구석기 유적지가 그의 작품에 모티베이션이 됐다. 
1994년 임 교수에게 낭보가 날아왔다. 94MBC미술대전 비구상부문 대상에 뽑힌 것이다.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이듬해는 제14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도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전곡 구석기 유적지에서는 구석기 축제와 함께 설치미술제를 벌려 나가면서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다져 나갔다. 
기자는 임 교수와 이 무렵 만났다. 98년 쯤 전곡포럼이란 단체를 통해 설치미술제를 준비하면서 임 교수와 콜라보레이션(?)도 했다. 그 때 다친 팔의 상처가 아직 선명하게 남았고 지난달 십 여년 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만해도 임 교수의 작품은 2차원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그림 때문이라기보다 그림을 보는 안목의 부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원시의 유인원 루시와 현대인으로 대변되는 자아를 끊임없이 연결시키려는 시도였다.
십여년이 지난 후 만난 임 교수의 작품은 4차원으로 꽃이 벙글고 있었다. 
복숭아꽃이 팝콘처럼 터져 나와 바닥으로 데구르르 구를 것만 같이 풍성하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그림은 분명 2차원적인 평면 물체인데 이것이 4차원 이상의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임근우 교수 그림에서 보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라며 작품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우주공간의 무중력이라고 표현했다.     
배 교수와 임 교수의 인연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배 교수가 전곡리 구석기 유적 보전을 위해 고고학축제를 만들어 고군분투 하던 시절인 90년 대 초에 만났다.      
유물이 발견된 곳에 빨간 딱지를 붙인 임 교수의 작업에 ‘의식적 소통’을 이뤘고 결국 둘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이 만남이 임 교수의 작품 근간인 고고학적 기상도에 새로운 방점을 찍게 만든 것이다. 임 교수의 작품에 배 교수가 등장하는 것은 이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배 교수는 “임 교수 작품의 진화의 발향은 격국 논리적인 설명이 가지는 원천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라며 “논리의 상대성은 인정되지만 절대적인 진리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의 고고학적 기상도는 어려서 밑그림이 그려졌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 집에서 20km 떨어진 지석묘까지 고무신을 신고 걸어가곤 했다. 임 교수는 “고인돌 안에 들어가 누워보고 옆을 보듬어 끌어 안아보기도 했다”면서 “그것은 아마 5000년 전 이 땅에 숨 쉬고 살았던 고대 인류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성장한 임 교수는 미대에 들어가 자아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거쳐 ‘진짜 임근우’를 만났다고 한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 벽면을 모두 백지로 붙이고 기록을 써 내려 갔고 그곳을 모두 채웠을 때 비로소 내면의 자아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때 임 교수는 어린 시절 품었던 의문과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를 만났다고 고백했다.  
“우주의 무한 가능한 공간을 동경했고 그토록 궁금해왔던 과거의 수수께끼가 고고학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70년대 김동완 기상 통보관이 매직펜으로 삐뚤빼뚤 그리던 날씨 기상도가 미래를 알려주는 과학적 미래 예측도였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다”
임 교수의 ‘Cosmos-고고학적 기상도’는 그렇게 발아됐다. 

서울 서초동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임근우 교수

다시 배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배 교수는 “지난 수 십년 동안 나는 ‘고고학적 기상도’라는 거대한 주제 하에 이뤄진 작업에서 과거의 인간들의 메시지를 오늘날, 또는 미래의 사람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것을 봐왔다”며 “”화면의 굴곡을 통해서 고고학적 발굴의 상징, 사람과 동물, 특히 말 머리에 피는 화사한 복숭아꽃이 전달하는 상징들은 바로 그러한 상징“이라고 해석했다.
임 교수는 다양한 섹터의 미술을 소화해 내는 만능 예술가다. 평면 회화, 입체 조각, 설치 예술 등 스펙트럼이 넓은 미술가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평론가들 시각이다. 또 실제로 그런게 우리 미술계의 풍토다. 그러나 임 교수는 각각의 영역에서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김윤섭 미술평론가는 “한 작가가 다양한 장르에서 재능을 인정받기 어려운데 임 교수는 마치 동명이인이라도 된 것처럼 각각의 작품에서 완벽함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설치 미술에서 도드라진 작품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상암월드컵경기장 앞 초대형 깃발 무리다. 
수 만장의 펄럭이는 오방색 깃발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음양의 조화와 만선의 기쁨을 상징하는 풍요의 상징으로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임 교수는 이미 두 차례의 최대 규모 미술대전에서 비구상계열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평면 회화에선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그가 설치 미술로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를 전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는 것은 김윤섭 평론가 말이 정확히 맞다는 것을 입증한다. 
설치 미술에 대한 그의 훈련은 90년대 전곡 선사유적지 지표면에서 매해 치러진 설치미술제에서 잔뼈가 굵었다. 90년 대 중반 월드컵 때 선보인 깃발의 초기 형태가 전곡에 등장한다. 그 깃발을 설치하다가 기자의 팔에 상처가 난 것이다.
창공에 휘날리는 깃발은 자유다. 자유는 유토피아의 또 다른 상징이다. 따라서 설치 미술의 깃발은 평면 회화에서 도원경과 맥을 같이 한다. 
평면 회화 속에 소재도 시대에 따라 변천이 있었다. 과거 90년대 후반만 해도 분홍색 도화는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전곡리에서 발견된 애슐리안 주먹도끼와 원시인, 맥고모자, 그리고 말이 주로 등장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진 도원경은 2006~2007년 실험적으로 시작돼 불과 몇해전 구체화되면서 화풍으로 자리 잡았다.
임 교수의 ‘고고학적 기상도’는 뫼비우스를 연상케 한다. 극과 극은 통하듯이 뫼비우스 띠는 영원무한하게 연결돼 있다. 고고학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기상예보까지 함축한 고고학적 기상도‘는 선사의 표징부터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리고 식물인 도화경과 이상체 동물까지 다양하지만 씨줄과 날줄로 연결돼 있다. 이는 영원을 상징하는 유토피아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상암월드컵경기장 앞 초대형 깃발 무리.

임 교수의 작품은 25년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임 교수는 ‘Cosmos-고고학적 기상도’라는 주제로 1990년 첫 개인전 발표 후 90년대 말까지 매년 1~2회의 개인전을 통해 거친 마티에르와 물성이 강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1995년 국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 역시 같은 연작이었다. 그 후 2000년대 들어 차츰 거친 마티에르와 물성을 배제하면서 고사리화석과 중절모자, 말 등의 도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현실의 행복과 이상세계의 꿈을 표현해 왔다. 최근의 작품 경향을 보면 말과 젖소, 그리고 기린이 합성된 이상형의 동물에서 나무가 자라나 복숭아꽃이 피는 ‘현대인의 유토피아’를 그림으로 담고 있다. 
임 교수는 본지가 경제잡지인 만큼 “우리 경제도 도원경 복숭아꽃처럼 풍성히 살아나길 바란다”며 지령 100호 축화(祝畵)를 그려 전달했다. 

[화보] 고고학적 기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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