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주회사의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는다. 그룹의 경영과 감시를 분리하며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오는 3월5일 이사회를 열고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내용의 안건을 상정한다. 현재 최 회장은 SK㈜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데, 의장직은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최 회장은 의장직에서 물러나도 회장직은 유지한다.

국내 대기업은 대표이사가 경영을 이끌면서 경영을 감시하는 이사회 의장까지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경영과 감시를 동일인이 맡으면 이사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없다는 지적 하에, SK그룹은 이미 그룹 내에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는 작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 이사회에선 자연스럽게 경영진의 입김이 약해질 수 있다. 차기 의장은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유력하다.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 인물이 이사회 의장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를 통해 경영진과 이사회를 완벽히 분리하고,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재계는 SK가 그동안 강조해온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국내 대기업들에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게감을 더하는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SK그룹은 행복창출 방법론으로 사회적 가치(SV)를 통한 비즈니스모델(BM) 혁신과 글로벌 성과 창출 등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전략을 실행해 나가기로 했다.

최 회장은 그동안 '사회적 가치'에 대한 철학을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니케이포럼 세계경영자회의'에서 연단에 올라 '사회적가치 창출에서 비즈니스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했다. 올해 신년회에서도 "SK가 건강한 공동체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행복을 더 키워나갈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라며 "그 척도는 사회적 가치(SV)"라고 강조했다.

경제계 내 SK그룹의 존재감이 커지는 가운데, 선제적으로 책임 경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도 주목받는다. SK그룹은 향후 5년간 5대 중점 육성분야에 총 3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아울러 반도체 특수 등으로 자산이 급증하며, 지난해 공정자산 규모는 213조원 수준으로 훌쩍 늘었다. 재계 2위 현대차와의 자산 규모 격차를 불과 7조원 수준으로 좁히며 연말엔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지주사 이사회 의장직 사임이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포석으로도 보고 있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지주사인 SK㈜의 기업가치를 제고해야 향후 지주사-주력 계열사 합병 시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SK그룹은 통신, 반도체 부문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