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골드만삭스 육성 프로젝트 추진

한국 증권업은 1949년 국내 1호 증권사 대한증권(현 교보증권) 설립 후 70년 가까이를 주식 위탁거래나 펀드 판매 수수료에 의존,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밀만한 증권사가 나오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한국형 골드만삭스 육성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유망 기업이나 대규모 프로젝트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한 골드만삭스가 모델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7년 11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 자기자본 규모가 4조원이 넘는 증권사 5곳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했다. 초대형 IB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올해는 초대형 IB 시대 출범 3년차다. 증권사들은 그간 IB 조직을 대폭 강화해 몸집을 만들었고 올해는 특장점을 살려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IB 부문에서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증권사들은 IB 사업 가운데 대체투자 부문에 주시하고 있다.

◇ IB통들 전진 배치…IB 인력도 2년새 33% 껑충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업계 수장들이 IB 출신들로 대거 교체됐다. 또 IB 조직은 확대 개편되고 인력은 크게 보강됐다. 자기자본 1위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11월 조직개편에서 IB 1~3부문을 아우르는 총괄 직제를 신설해 IB 조직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동시에 줄곧 IB에서 30여년간 실력을 쌓은 김성태 부사장을 사장을 승진시키고 IB를 총괄하도록 했다.

NH투자증권은 작년 3월 'IB 대부'로 불리는 정영채 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정 사장 발탁은 IB 출신 CEO 전성시대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같은 해 5월 IB 사업부를 1, 2부로 분리해 IB 조직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IB 1 사업부 아래에 중견·중소기업 대출, 회사채 및 주식 인수 등을 통해 기업의 필요 자금을 조달하는 인더스트리(Industry)부를 1본부와 2본부로 확대 재편했다.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에서는 IB 2 사업부 소속 프로젝트금융본부 아래에 실문자산금융부를 새로 만들었다.

한국투자증권은 12년간 조직을 이끌어온 유상호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정일문 사장이 올 초 취임했다. 정 사장은 1988년 입사해 2016년 자산관리(WM) 부문을 맡기 전까지 약 27년간 IB 부문에서 활약한 IB통이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이 최근 IB가 강화되는 추세에 맞춰 교체를 단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IB1본부 내에 '기업금융담당'과 대체투자 영업 활성화를 위한 '대체투자담당'을 신설했다.

KB증권은 올 초 박정림·김성현 KB증권 각자 대표이사 체제(각 대표가 독자적 결정권 보유 체제)가 발효됐다. 김성현 대표는 1988년 대신증권 입사해 금융투자업계에서 발을 들어놓은 뒤 30년가량을 IB에서 한 우물만 판 외부 출신 인재라 눈길을 끌고 있다. 또 IB 조직을 1개 총괄본부 내 10개 본부 체계에서 올해 2개 총괄본부 내 9개 본부로 확대했다. 기업금융 2본부 아래의 중소중견기업(SME)부를 1부, 2부로 늘렸다.

삼성증권은 작년 하반기 조직개편에서 IB 부문 아래에 대체투자본부를 새로이 만들었다. IB 조직이 3개 본부에서 4개 본부로 커졌다. 또 전통적인 IB 사업인 기업공개(IPO) 경쟁력을 확대하기 위한 인력도 지속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초대형 IB 5곳의 IB 조직 임직원은 지난해 말 총 1179명가량으로 2016년 말의 885명에 비해 2년새 300여 명(33.2%) 늘었다. IB 인력 규모를 증권사별로 보면 미래에셋대우가 316명으로 가장 많다. 유일하게 300명대다. 이어 KB증권(291명), NH투자증권(232명), 한국투자증권(220명), 삼성증권(120명) 순이다. 이들은 향후에도 IB 인력을 적극 확충에 나간다는 방침이다.

◇대체투자·글로벌 인프라·기업금융에서 경쟁 격화 전망

미래에셋대우는 향후 IB 사업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증권사다. 8조원 이상의 압도적인 자기자본, 10개국 13곳 해외법인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 오랜 기간 축적한 해외 거래 발굴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IB 부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IB 사업 초점을 개인 고객들도 다양한 IB 상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데 맞췄다. 기존 IB 상품의 수익을 기관들이 독점하다시피 했지만 이를 바꿔보겠다는 것. 특히 미래에셋대우는 여러 투자 자산 가운데 선진국 인프라를 주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 투자자들은 만기는 짧으면서도 안정적이며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의 IB 상품을 미래에셋대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은 "향후 글로벌 IB로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될 회사의 지원시스템의 구축을 지난해 완료했다"며 "미래에셋의 차별화된 IB 상품의 경쟁력이 빛을 발할 것이며 IB 상품의 경쟁력이 자산관리(WM) 채널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IB 명가' NH투자증권은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초대형 IB 핵심 사업인 발행어음 인가를 작년 5월 받았다. 초대형 IB 5곳 가운데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곳은 현재 2곳뿐임에 따라 확보한 우위를 십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초대형 IB로 지정되고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두 배 한도에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기업금융부 비즈니스에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의 작년 말 발행어음 규모는 1조8000억원이며, 내년 수신 잔고 목표치는 4조원이다.

NH투자증권은 또 갈수록 커지는 대체투자 부문에 역량을 쏟는다는 그림을 그렸다. 올해 IB 사업 방향에 대해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대체상품 수요 급증에 대비해 경쟁사보다 앞선 해외시장 개척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IB 시대 개막과 동시에 유일하게 발행어음 사업 허가를 받은 증권사다. 발행어음 출시 1년을 맞는 지난해 11월 발행잔액이 3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내년에는 6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올 초 취임한 정일문 대표이사는 "IB 역량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신성장, 혁신기업 등 모험자본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계열사 간 시너지 강화, 디지털 경쟁력 확충, 해외 현지법인 성공 안착 등의 중점 경영 방향을 제시했다.

KB증권은 채권발행시장(DCM)에서 8년 연속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김성현 KB증권 각자대표는 "올해는 DCM 시장에서 경쟁사들과 초격차를 벌이겠다"며 "이를 위해 DCM 분야는 사업의 깊이를 더해 기업의 장단기 자본조달의 플랫폼으로 육성시키겠다"라고 발표했다.

인수금융, 유상증자, 기업공개(IPO) 등을 포함하는 주식발행시장(ECM)에서는 올해 상위 3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20건이 넘는 IPO 물건을 확보함에 따라 3위 목표 달성이 순탄할 것으로 관측했다. 김 각자대표는 "올해 확대된 신용공여 자본력을 바탕으로 주요 전업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인수금융 분야의 지위도 기존 4위에서 향상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KB증권은 작년 말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의 인가가 이뤄지면 자금이 신성장 신기술 기업으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역할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증권은 올해 연기금, 보험 등 기관 투자가들이 주식, 채권 등 전통적인 자산보다 대체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주식, 채권 외에 부동산, 실물 등에 분산투자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IB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삼성증권도 올해 대체투자 사업을 지속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심원정 삼성증권 IB 부문장은 "대체투자 부문은 시장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만큼 인력 및 인프라를 추가 투입해 딜 기회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도 미래에셋대우처럼 선진국 인프라 자산을 관심 있게 봤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IB와 WM 부문 간의 시너지를 강화하기로 했다. 가령 WM에서 확보한 기업 오너 고객 등에 대한 IB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까지 영업 범위를 확대해 IB딜을 따내겠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업의 수익구조는 중개 매매에 따른 수수료 수익 중심에서 IB, 트레이딩 등 자본활용 수익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상품 제조의 기반이 되는 IB 부문 역량이 향후 증권업의 핵심 역량이 되고, 수익성 있는 딜을 발굴해 고객 수요에 맞는 상품으로 구조화해 공급하는 것이 앞으로 증권사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타이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