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식품기업 운영 다짐…5년 후 기업공개 당찬 각오

양현경 맛앤멋 인더스토리 대표

더위가 한창이던 8월 중순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해 7월호에 인터뷰 한 양현경 맛앤멋 인더스토리 대표다. 지난해 식품공장을 짓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닐 때 만난 터라 공장이 궁금했다. 다부지게 약속한 연매출 500억원짜리 회사를 만들겠단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간 재창업을 위해 동분서주한 이야기를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자.      

지난 해 봄 나는 성북동을 나왔다. 54년간 살았던 동네를 등 떠밀려 떠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시 되돌아 올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자신감을 건드렸다.
“괜찮아! 다시하면 돼. 너니까 할 수 있어. 뒤 돌아보지 말고 앞만 봐. 넌 항상 최고야. 죽지 않아!”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큰 집이었기 때문에 살림살이도 어마어마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간신히 둥지를 틀고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7월 15일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만 죽지 말고 살자고 다독였다. 그날은 바로 신용회복위원회에 서류를 낼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날이었다. 
그날을 위해 서류와 현물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1년 전 부터는 삼계탕 레토르트를 개발하는데 전념했다. 이 제품 특허 업무를 위해 인터넷을 뒤져서 싸게 해주는 변리사를 찾았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변리사 수수료가 없어서 삼계탕으로 일부를 냈을 정도다. 다행이 특허 출원은 기각 되지 않았다. 그날부터 신용회복위원회에 낼 서류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경매 물건에 대한 경매 확인서, 지난 회사 서류, 잡지 인터뷰 기사, 먹거리 시장 조사 등 바인더 한권짜리 두툼한 서류를 만들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가는 날까지 서류를 여러 번 뒤적거렸다. 검토와 수정을 거치는 시간, 기분이 좋았다. 마음속에 재기의 용기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좋아 양현경 잘했어!”
서류를 접수하자 맥이 풀려 병이 났다. 죽도록 아팠다. 그런데 죽을 시간이 없었고 죽음을 생각할 만큼 한가로운 시간도 없었다. 
재창업 준비와 짬짬이 아르바이트하고 또 이리 저리 자금을 융통해서 사무실 임대료와 자동차 렌트비, 가스비 등을 냈다. 
돈이 없으면 절대로 사람을 안 만났다. 비록 망했지만 누군가의 짐이 되기는 싫었고 재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연민과 동정심에 의해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150만 원짜리 법인을 만들었지만 사업자등록증이 안 나왔다. 국세 체납 때문이었다. 관할세무서 담당자를 만나 끈질긴 설득 끝에 사업자등록증을 만들 수 있었다. 회사이름은 맛앤멋 인더스토리. 일주일 이상 고민해서 만든 이름이다.  
당시 난 회장, 사장, 직원의 복합 심리를 갖고 일을 했고 식품 제조업을 하면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리고 안전 먹거리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까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안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 과정에서 일벌레 같은 모습에 박수도 쳐줬고 힘들고 지쳐서 울고 있는 나를 보기도 했다. 
서류 접수 후 약 보름 쯤 뒤에 전화가 왔다. 지역번호 032로 시작되는 모르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양 사장님. 기술보증기금 회생 센터입니다”
“아! 기술보증기금”
1.5평짜리 사무실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다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문에 대고 인사를 했다. 
“네, 네, 네”
네란 대답이외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다음 주 수요일에 기술보증기금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더디게 일주일이 흘렀고 기보가 있는 송도로 향했다. 손에는 삼계탕 세 봉지가 담긴 박스가 들려 있었다. 지난 일년동안 나를 지탱하게 해준 효자다. 낯 두껍게도 삼계탕 세 봉지로 40억원에 달하는 빚을 탕감 받고자 한 것이다. 
빚 탕감만이 아니라 신규 대출까지 부탁할 심산이었다. 부지점장과 지점장을 잇따라 만났다. 그리고 삼계탕 한 봉지씩을 내밀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방문해 달라는 약속을 받았다. 

건설업자 잘못만나 공장 건설 물거품
그 사이 추가로 요구한 서류를 만들었고 신용 회복은 물론 기보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을 받아서 경기도 광주에 꿈에 그리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명적 실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공장을 짓는 건설사를 잘못 택했다. 공장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목숨 같은 자금을 몽땅 날리고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유치권’이 날아들어 왔고 그 과정에서 나의 오만함과 경솔함에 치를 떨었다. 올 1월부터 5월은 또 그렇게 어두운 ‘흑역사’를 쓰며 보냈다.  
과거 공장과 집이 경매에 넘어 갈 때보다 더 큰 좌절을 했다. 내가 죄가 많았기 때문이고 이 사회에 몹쓸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받은 자업자득이라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 오고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야심차게 추진했던 공장설립 프로젝트는 이렇게 망가졌다. 
기보를 다시 찾았다.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날짜 별로 정리를 해서 갖다 주면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서류를 내고 기도를 하면서 지냈다. 
6월 1일 새로운 공장 부지에 나와 기도를 하고 앉아 있는데 기보에서 전화가 왔다. 심사를 통과했으니 공장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다. 모자란 금액도 기적적으로 만들어졌다. 3년 전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또 우연히 만났는데 사정을 이야기하니 자금을 대준 것이다. 아무 조건도 없이 말이다. 

기보·엔젤투자자 도움 극적 회생
이렇게 해서 8억원을 들여 공장이 완성이 됐다. 시제품을 만들고 틈틈이 인력을 채용해 벌써 10명이 됐다. 다행이 시제품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나왔고 9월이면 본격적인 생산을 할 예정이다. 올 매출은 약 20억원 정도로 전망한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매출을 신장시킬 수 있다. 일단 색소, 방부제와 화학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고  천연 원료로 만들었다.
나는 큰 회사를 만들기보다는 내실을 기할 것이고 잔재주보다 무식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직한 음식을 우직하게 만들 것이다. 
이미 제품을 받으러 오는 업자들이 있고 제품을 기다리는 회사가 있다. 회사가 너무 잘돼 현재 공장으로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떡하나란 행복 한 고민 중이다. 난 5년 후에는 기업을 공개할 예정이다. 투명하고 정확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지난해 5월 성북동을 떠날 때의 눈물을 잊지 않을 것이며 9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다시 기회를 준 이 사회에 대한 고마움도 가슴에 아로 새기며 살 것이다. 
난 이 나라와 사회를 사랑한다. 나라를 위해서 내 인생을 헌신 할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 행복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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