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요리전문가 국가자격 제도화가 목표

양승 한국약선요리협회 회장

“저의 요리 입문기는 우연의 연속입니다”
양승 한국약선요리협회 회장(중의학박사․57)에게 요리를 접하게 된 동기를 묻자 주저 없이 나온 대답이다.
계획한 인생 진로가 아닌 ‘우연한 기회’였다니 흥미진진해진다. 그런데 양 박사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충격적이었다.
“연좌제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으로 요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양 박사가 요리에 입문할 무렵만 해도 연좌제에 얽히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리사만큼은 서양요리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해외 출입국이 그나마 자유스러웠다. 그래서 요리 중에서도 서양요리를 선택한 이유다. 이보다 앞선 그의 요리 입문기는 좀 더 재미나다. 양 박사는 마산에 있는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의 첫 인상은 조리하는 병사가 남자라는데 대한 놀라움이었다. 남자 요리사를 본 것이라야 중국집 주방장이 전부였던 그에게 군대 조리병은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제대를 한 그는 경영학과로 복학하지 않고 경희호텔경영대학 조리과로 편입을 선택했다.  뭣도 모르고 입대한 군대에서 취사병을 보는 순간 바뀐 그의 인생항로는 바로 우연이었다. 식재료를 다루고 조리를 하는 즐거움과 와인과 같은 술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요리사의 길로 이끈 것이다. 

‘우연의 연속’으로 약선요리 입문
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롯데호텔 조리부에 입사한 그는 10년간 그곳에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섰다. 
호기심에 열정과 재미까지 더하다보니 직장에서 금세 인정받는 인재가 됐다. 인턴부터 시작한 그는 6개월 만에 진급해 최단기간 승진기록을 세우며 매 2년마다 승승장구를 거듭해 끝내 최고 자리인 주방장이 됐다. 
양 박사는 “당시만 해도 롯데호텔에 요리사 400명 중 대졸이 10여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경쟁이 따로 불필요했다”고 겸손해 했다. 조리사로서 오를 때까지 오른 그는 호텔을 그만두고 여의도에 뷔페를 차리고 시간을 쪼개 서울수도요리학원 양식조리강사로 후학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여의도 뷔페에 오신 손님 중 주역(周易) 공부를 하는 사람을 만났다. 양 박사는 처음엔 주역 공부로 시작했지만 너무 늦은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무렵 주역 선생도 그에게 “건강한 사람을 위한 음식은 많다. 아픈 환자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보지 않겠냐”며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한마디가 그를 약선(藥膳) 음식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요리를 했기 때문에 기술을 살리는 방향으로 다시 선회했다. 이때가 1995년이다.  
약선은 약(藥)과 음식 선(膳)을 합친 말로 약이 되는 음식이란 뜻이다. 한의학 기초이론에 식품학, 조리학과 영양학을 접목한 학문이다. 
약선의 실질적 의미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체질과 유형에 따라 적합한 음식을 제공해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장수를 도와주는 임상응용 식사요법이다.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1회 국제미식양생요리대회에서 한국팀을 이끌고 출전해 대회 단 1명만 수여하는 대상 수상을 비롯해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사진은 단체전 금상을 수상한 서울팀과 기념 컷. 좌로부터 대상을 수상한 문원식(조선호텔 셰프), 유제희(더케이호텔). 손미숙(약선전문 파주 매화한정식), 양 박사, 문정희(사찰음식연구가), 황지희(세계요리연구가·세이 F&C 대표), 김우석 씨(조선호텔 셰프).

약선, 한의·식품·조리·영양학 접목 
당시 국내에선 약선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양 박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천지중의약대학 중의과에 입학해 체계적인 수업을 받았다. 미처 중국어를 배우지 못하고 무작정 입학한 그는 1년간 언어 때문에 고생을 했다. 1년이 지나자 간신히 입과 귀가 열린 그는 2학년 때 1학년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매해 그런 식으로 학과 공부를 따라갔다. 
언어로 인한 지체까지 고려해 중국에서 5~6년 정도 공부를 하고 귀국하려 했던 그에게 졸업할 무렵 오기가 발동했다.
동양의학에 대한 호기심이 한껏 물오른 터라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는 침구추나과 석사과정에 등록하고 천진에 도호생활치료연구소(한의원)를 운영했다. 석사는 박사과정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 결국 양 박사는 박사학위까지 받아 쥐고 귀국했다.
11년 만에 국내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약선요리가 저변확대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명지대와 원광대 대학원 정도에 약선과정이 있었을 뿐이다.    
일단 명지대 산업대학원 식품양생학과 약선전공 강사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교단에 섰지만 학생들에게 가르칠만한 제대로 된 교재가 없었다. 일상에서 먹는 제철 식재료에 대한 약선 이론서의 부재가 그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다.  
2007년 첫 교재인 도호약선조리학을 시작으로 최근 펴낸 도호약선이론, 도호약선본초학까지 모두 9권이나 펴냈다. 도호(道湖)는 그의 주역 선생이 지어준 별호다. 크고 넓은 길이 되란 의미를 담았다.   
이들 저서는 그가 11년을 배우고 10년을 가르치면서 쌓은 약선 지식을 쏟아 부은 결정체다. 
강단에서 후학 양성과 함께 기업부설연구소장 직을 맡아 중탕 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한 그는 국내에 약선 보급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약선요리 전문가들로 이뤄진 협회를 조직해 저변 확대에 나선 것이다. 그가 설립해 9년 동안 이끌어 온 한국약선요리협회는 올 3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정식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올 3월 한국약선요리협회 정부 인가 
약선요리협회는 약선이론과 조리실무를 겸비한 최초의 약선 단체인 셈이다. 처음 협회를 만들면서 그간 연구소장을 맡아왔던 기업체를 그만두고 협회 일에 전념했다. 
그 결과 9년 간의 성실하게 회무 업력을 쌓아 유사 단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인가 사단법인으로 발족할 수 있었다. 
“한국약선요리협회의 차별화는 지난 2007년부터 세계 약선요리대회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약선요리 발전과 교류 확대에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양 박사는 2009년 4월에 열린 제5회 세계미식양생요리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이 분야에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대회 명칭이 중화미식약선요리대회였을 때부터 참가한 창설 멤버이기도 하다.
양 박사는 그해 11월 경남 합천에서 국제음식양생연구회 창립대회를 열었고 이듬해는 대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이 돼 경북에서 제6회 대회를 치렀다. 
현재는 상무부회장(수석부회장에 해당)으로 있으면서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1회 대회에 9개 지역팀 총 27명으로 이뤄진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가, 영예의 대상(문원식 조선호텔 셰프)을 비롯해 참가팀 전원이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대상을 받은 문 셰프는 양 박사가 배출한 지도자과정 애제자 중 한명으로 주경야독을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약선요리계 차세대 리더다.
양 박사는 “음식 조리는 우열을 가르는 경쟁이 될 수 없다”며 “미식양생요리대회는 서로 약선요리를 발전시키는 정보 교류의 장으로써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양 박사는 문 셰프 같은 실력으로 무장한 약선요리 전문가 양성에 올인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의학 전문성을 살려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식단 개발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광주와 대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약선요리 강좌를 잠시 중단한 서울에서도 개강해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갖추겠다는 복안이다. 
약선요리 강좌는 정규반, 심화반, 지도자반 각각 3개월과 방학을 포함해 1년 과정이고 지도자과정은 3개월마다 특강을 통해 재교육을 시켜 완전한 전문가로 양성하고 있다.  
현재 약선요리협회 회원은 약 400여명. 더 많은 전문가들을 배출해 약선을 한식, 중식, 일식 등과 같이 조리산업기사 자격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물론 산업기사로 인정 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도 건강백세 시대, 식약동원 시대엔 약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도 우리 밥상위엔 약선음식이 넘쳐 납니다. 다만 이를 효과적으로 섭취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전문가가 없는 것이 아쉬웠던 것이죠. 이를 위해 약선전문가들이 병원, 요양원, 학교, 단체급식을 하는 현장에서 국민들에게 건강밥상을 제공하는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약선분야 조리산업기사 배출 목표
양 박사를 만난 것은 무더위에 습도까지 높았던 8월 중순. 체력적으로 한창 지칠 때다. 그래서 한여름에 좋은 약선요리 단품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자 ‘오리녹두죽’을 권했다.
오리와 녹두가 찬 음식이고 쌀은 뱃속을 편안하게 해주니 대부분 사람들이 무리없이 먹을 수 있는 요리다. 다만 열성이 있는 생강을 곁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리와 녹두만으로는 자칫 속이 차가워질 수 있으니 생강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오행의 원리를 담은 것이다. 
양 박사는 “‘여름 생강, 겨울 무는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꼭 필요한 만큼은 섭취해야 하는 음식”이라며 “냉면에 겨자를 넣고 찬물에 보리밥 말아서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원리와 같다”고 말했다.
양 박사는 이어 “자연과 인체 현상을 연관 지어 개인에게 맞는 음식의 레시피를 찾아내는 약선은 결코 만만치 않은 학문”이라며 “동양의학 이론에 맛과 영양을 겸비해 건강한 몸을 유지시키는 음식이 약선”이라고 덧붙였다.
양 박사가 이끄는 한국약선요리협회는 △약선 정통성 정립 △약선 산업진흥 △약선 세계화 추구 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타이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