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유해·위험 작업은 전문 외주업체에 맡겨야 된다.
위선적인 정책이 경제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지난해 연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한 허점을 갖고 있다. 법 개정의 취지는 안전사고의 원인을 비정규직 문제에 돌리는 노동계의 주장에 따라 외주를 금지하는데 있다. 법 개정으로 기업이 유해·위험작업에 대해 외주를 줄 수 없고 원청 사업주는 모든 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며 법 위반에 대한 형사처분 수위를 강화했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금지다. 이는 모순이다. 문제의 본질은 외주 때문이 아니다. 안전관리가 소홀해서 사고가 난다. 유해·위험 작업은 숙련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유해·위험 작업이 상시적으로 있는 기업이 아니라면 이 일을 맡는 별도의 조직을 두기 어렵다. 이런 경우 외주를 줘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정규직이라도 숙달되어 있지 않으면 대형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안전관리 전문 기업에게 외주를 줌으로써 위험을 진단하고 안전훈련도 독려하는 것이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 때문에 사고가 적은 선진국은 안전관리서비스산업이 발달하고 여기에 종사하는 고숙련·고임금 근로자도 많다.
비정규직이라서 안전사고가 많다는 주장도 모순이다. 문제의 본질은 정규직이 유해·위험한 일을 기피해 경험이 없는 비정규직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문제 생기면 업자 불러서 일 시키면 된다는 인식이 노사 모두에게 깔려있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노동조합은 임금을 올릴 수 있으니까 비정규직을 활용한다.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의 안전사고는 노동조합과 사업주의 담합 결과로 볼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꾼다고 안전사고 줄이지 못한다. 안전관리는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사고를 줄이는 유일한 방책이다.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처벌이 아닌 사고 예방에 목적을 둬야 한다. 본말이 전도된 개정법은 민간 기업이 사고 위험이 아니라 처벌 위험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아도 처벌 강도가 크면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다. 이렇게 되면 사고는 줄어 든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산업과 일자리가 사라진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공기업은 최종적인 사업주가 정부다. 사고가 나면 정치논리로 피해나가서 그런지 민간 기업보다 산업안전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낮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이나 서부발전 태안 사고처럼 공기업에 안전사고가 유달리 많은 이유다. 공기업은 민간 기업에 비해 책임소재가 복잡하고 노동조합의 힘은 강하다. 또한 공기업에는 관리자가 많고 현장에서 안전작업을 수행할 인력이 부족한 문제도 있다.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통신재난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촉발했던 구의역 사고의 경우 서울교통공사 위에 서울시가 있고 노동계 입김이 강한 서울시는 사고를 비정규문제에 화살을 돌리면서 책임을 피해갔다. 정부부터 솔직해야 안전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