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단국대 경제학과 4학년)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혀,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때려 부수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대사 중 일부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 백수’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능력이 부족하고, 노력하지 않고, 열정이 부족한 청년이라 딱지를 붙이면서 모든 화살이 청년 개인의 문제로 돌려지고 있다. 청년층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업 실패 이유를 학벌, 공인 영어시험 점수, 경험의 부족 등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백만 명 이상에 달하는 청년 실업자들을 전부 ‘문제아’의 시선으로 그리고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다. 그 중 나와 나의 동기들이 있다. 우리는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내내 졸업을 할 것인지 유예를 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우리는 한명을 빼고 모두 졸업을 유예했다. ‘취업을 아직 못해서’ ‘취업시장에서는 대졸자 보다 유예생의 신분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또는 ’졸업자는 참가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하는 수만 명의 ‘우리’에게 유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많은 취준생들이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니트족이 되어간다. 니트는 일하지도, 학교 다니지도, 훈련을 받지도 않는 사람을 말하다. 하지만 청년의 ‘눈높이’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먹고 살 만큼의 임금을 받으며, 적정시간의 노동을 하고, 해고 걱정이 없는 직장 그것이 대부분의 청년층이 바라는 안정적인 직장이다.

청년의 니트 상태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은 맞다. 그러나 나트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교육과 노동시장 등 국가의 구조적, 제도적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취업을 미루는 청년 니트족에게 단순히 ‘눈높이’가 높다고 비판 할 수는 없다고 본다.

현재의 청년 니트 문제를 단순히 고용정책으로만 풀어나가기보다 청년 니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바뀌어 비정규직의 처우, 임금 차별 해소 등 구조적 제도적인 문제를 한 단계씩 해결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다보면 언젠가 청년실업의 실마리가 풀리고 청년에게 니트라는 말이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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