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지 25년이 흘렀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일성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신경영 선언은 1990년대 초 이 회장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당시 삼성은 '질' 보다 '외형'을 중시하는 관습에 빠져 있었다.

 삼성 경영진은 전년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지 양적 목표에만 집중했다. 부가가치나 시너지, 장기적인 생존전략과 같은 요소는 소홀하게 취급했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 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개최했다.

 그는 현지 매장의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있는 삼성 제품들을 살펴본 뒤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가 왜 삼성이라는 이름을 쓰는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이 회장은 같은 해 6월 해외시장을 순방하던 중 사내방송팀이 제작한 비디오테이프를 접하고 분노했다. 비디오테이프에는 세탁기 조립 라인의 직원들이 규격이 맞지 않은 세탁기 덮개를 즉석에서 칼로 깎아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삼성 신경영은 양 위주의 외형만 강조하는 경영 관습을 타파하고, 질을 중점적으로 챙기는 새로운 경영구조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질 위주'의 경영을 정착시키고 불량을 뿌리 뽑기 위해 '라인스톱제', '휴대폰 화형식' 등의 조치를 취했다.

 라인스톱제란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제도다.

 신경영 이후 라인스톱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세탁기 생산라인이었다. 세탁기 생산라인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후 곧바로 라인을 스톱해 불량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해결한 후 다시 가동에 들어갔다.

 세탁기 라인에서 시작한 라인스톱제는 곧바로 전자 관계사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산됐다.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라인스톱제와 함께 질 위주로 가기 위한 삼성의 뼈를 깎는 의지를 보여 준 사례가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이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15만대, 150여억원 어치의 제품이 수거됐고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됐다. 이러한 가시적 조치와 노력을 통해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이 삼성 구성원에게 스며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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