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상대로 ISD(해외투자자의 국제중재)를 제기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한 합병으로 약 7100억원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재의향서를 토대로 향후 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로펌 섭외에 나서는 등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엘리엇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지난달 13일 접수한 투자자-국가 분쟁(ISD·Investor-State Dispute) 중재의향서를 11일 공개했다.

 중재의향서는 본격적인 ISD 절차에 돌입하기 전 분쟁 사실 등을 알리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다. 한미 FTA상 이 같은 중재의향서가 접수되면 이를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중재 제기는 중재의향서 접수 후 90일 후부터 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현재 국제 분쟁 절차를 도와줄 국내 로펌을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개된 중재의향서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2015년 박근혜정부 시절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과 주주들이 6억7000만 달러(약 7182억여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FTA에 따라 전임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한 현 정부의 입장도 요구했다.

 엘리엇은 "합병을 둘러싼 스캔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라며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박 전 대통령 본인뿐만 아니라 삼성의 고위 간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에 대한 형사 재판과 유죄 판결이 잇따랐다"라고 밝혔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을 거론한 것이다.

 이어 "엘리엇에 대한 편견과 (당시) 부패 환경이 아니었다면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법당국은 국내법에 따라 (합병과 관련된) 전 정부 관계자들의 책임을 물었다"라며 "한국 현 정부는 국제법 의무에 따라서 전 정부의 위법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엘리엇은 피해 액수로 적시한 6억7000만 달러의 산출 근거는 중재의향서에 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최근 국내 대형 로펌 여러 곳에 이 사안과 관련한 제안 요청서를 보내 승소 전략 등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재의향서에 엘리엇 측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등이 담기지 않아 실제 중재 제기 전 양측이 만나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무부는 "관계부처가 합동 대응체계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향후 진행되는 절차에도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2015년 5월부터 추진됐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흡수합병 계약을 맺으면서 합병비율을 1대 0.35로 정했다.

 삼성물산 주식 7.12%를 보유한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패소했다.

 최근에는 검찰이 5%룰 위반 혐의로 엘리엇 측 실무 담당자를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본인과 특별관계자를 합쳐 특정 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5일 안으로 공시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엘리엇은 지난 3일 발표문을 통해 "이전 정부와 국민염금의 부당한 개입과 관련해 손해배상을 추진하고 있음을 밝힌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검찰 내사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언론에 노출된 데 대해 우려를 갖고 주목하고 있다"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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