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초기 대응 화 키웠다 지적

지난해 독일에서 발생한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사건과 관련 조성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장과 임원진 등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전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 조 사장 등을 고소하며 수사가 시작된 지 5개월여 만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주형)는 조 사장에 대해 재물손괴·명예훼손·업무방해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달 15일 밝혔다. 조 사장은 삼성전자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하고 이로 인한 세탁기의 손상이 제품의 하자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세탁기 개발담당인 조모 상무를 재물손괴 혐의로, 홍보 담당 전모 전무를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전자는 자사 세탁기의 제품 이미지를 떨어뜨리기 위해 LG전자가 고의적으로 이와 같은 행동을 벌였다는 입장이다. 반면 LG전자는 통상적인 경쟁사 제품테스트일 뿐 고의 파손은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사장과 조 상무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개막 이틀 전인 지난해 9월3일 자툰 슈티글리츠에서 1대, 자툰 유로파센터에서 2대의 삼성전자 드럼세탁기 크리스탈 블루 도어 연결부(힌지)를 고의로 부순 혐의를 받고 있다. IFA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자제품 전시회다.

전 전무는 세탁기가 파손된 다음날 고의로 세탁기를 부수지 않았고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손상됐다는 허위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열흘 뒤에도 조 사장과 함께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세탁기를 일부로 부순 혐의를 부인했고 보도자료의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했지만 수사를 통해 드러난 여러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기소했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LG전자 임원들이 가전매장에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하고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해 삼성전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며 조 사장과 임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당시 가전매장을 촬영한 CCTV 영상을 분석하고 조 사장 등이 무릎을 굽혀가며 열려 있는 세탁기 도어를 양손으로 내리누르는 장면에 대해
세탁기 파손에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이후 조 사장 등 3명과 목격자, 관련 참고인 등 20여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와 경남 창원 공장의 임직원 9명 사무실도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노트북컴퓨터, 업무일지, 휴대전화와 이메일 내역 등을 분석했다.

한편 LG전자는 지난해 12월12일 “삼성전자 직원이 세탁기 본체에 충격을 줘 위조한 증거물을 검찰에 제출했고 조 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삼성전자 임직원을 증거위조·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맞고소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은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수사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CCTV서 세탁기에 충격 가하는 모습 포착
두 회사는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 개막 직전 발생한 이번 사건을 두고 5개월여 동안 신경전을 벌여왔다.

이달 초 검찰은 글로벌 가전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두 회사 대표가 재물손괴 사건으로 법정에 선다는 것은 ‘국력 낭비’라고 보고 합의를 중재했다.

실제로 중국 하이얼 등 백색가전 업체들이 중국정부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내수시장을 장악하며 급성장하고 있고 일본 가전업체들도 부진을 딛고 B2B 사업을 펼치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커 합의에 실패했다.

조 사장의 변호인 측은 “글로벌 기업의 사장이 상대회사 직원들까지 지켜보는 앞에서 고의로 손괴를 했다고 인정할만 한 증거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미 독일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법정에서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LG전자 측이 허술한 초기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세탁기 파손 고의성 유무를 떠나 사건 초기에 유감을 표명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빠르게 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조 사장 등이 재물손괴범의 오명을 쓰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삼성전자 세탁기가 파손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LG전자는 “이번 일은 고의성이 없었고 경쟁사 제품의 하자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얼마 뒤 LG전자는 “경쟁사의 제품을 테스트한 적이 있으며 이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라며 “유독 특정업체의 제품만 손상됐다”며 말을 슬며시 바꿨다.

현지 임원들이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세탁기를 만진 적은 있지만 고의로 망가뜨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삼성전자가 독일 현지로부터 공수된 세탁기를 검찰에 제출하자 이번에는 “당초보다 늦게 제출된 자료는 삼성 임직원들이 일부러 충격을 가한 것”이라며 “이는 증거 위조 행위에 해당한다”며 기세를 높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LG전자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검찰이 수차례에 걸쳐 조 사장에 대해 출석을 요구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CES 2015 이후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전할 뿐이었다.

검찰 출석에 조 사장 측이 미온적 반응을 보이자 검찰은 여의도에 위치한 LG전자 본사와 창원공장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하며 LG전자를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조 사장은 CES 2015 진행 차 출국하기 며칠 전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여기에 현장 CCTV에서 포착된 LG전자 임원들의 삼성전자 세탁기에 충격을 가하는 모습과 LG전자가 낸 고소 건이 증거 불충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서 결국 LG전자는 대부분의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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