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배려 알 것 같다” 뒤늦은 후회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지난달 12일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안전운항 저해 폭행,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업무방해, 강요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날 녹색 수의에 굳은 표정으로 재판장에 들어와 이내 고개를 숙이고 귀 뒤로 넘겼던 머리카락을 빼내 얼굴을 가렸다.

재판부는 검찰이 조 전 부사장에게 적용한 혐의 중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를 제외한 4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항공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와 사무장을 내리고 출발했다”며 “이는 당초 예정된 경로를 변경한 것으로 항로변경죄를 유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승무원에게 용서받거나 합의하지 못했고, 사무장과 승무원이 받고 있는 고통이 매우 큰 점, (사건이) 외국 언론에도 보도돼 국가 위신을
추락시킨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항공기안전운항저해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선 “조 전 부사장으로 인해 출발이 24분가량 지연됐고 다른 항공기 운항을 방해해 충돌 가능성도 있었다”며 “부사장으로서 승무원 업무배제 및 스케줄 조정 권한이 있더라도 지휘·감독권을 초월할 수 없다”고 유죄 판결했다.

실형을 선고 받은 조 전 부사장은 구치소 분류처우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남부구치소에 수감될 예정이다.

재판 후 조 전 부사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 측 관계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과한 행동을 했지만 사건이 여론과 엮이면서 검찰도 기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항공사 임원이 직원을 하기한 것 갖고 어느 나라 검찰이 기소를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판결문을 검토하고 조현아 전 부사장 등과 협의를 거쳐 다음날 항소장을 제출했다.


檢, “구형보다 형량 적어”
한편 이날 재판장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직접 작성한 반성문이 공개됐다. 재판부가 반성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조 전 부사장은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들썩였다.

조 전 부사장은 반성문에 “모든 일이 제 탓이고 제가 정제도 없이 화를 표출해 여과 없이 드러냈다”며 “김 승무원과 박 사무장에게 내리라 해 마치 그 비행기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 모멸감을 줬다”고 적었다.

반성문에서 조 전 부사장은 “(그날) 내가 화를 다스렸다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날 아무 일 없었더라면, 박 사무장이 언론에 말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렇게 회사를 놓아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30일 동안 구치소에서 내게 주어진 건 두루마리 휴지와 수저, 비누, 내의, 양말 두 켤레가 전부”였다며 “주위 분들이 샴푸와 린스를 빌려주는 등 고마웠는데 더 고마웠던 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이게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선고를 앞두고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모두 6차례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박 사무장 “조현아, 나 한 번 죽여”
‘땅콩 회항’ 사건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김도희 승무원의 위증, 대한항공과 국토부 간 유착, 박창진 사무장에 대한 처우 등 숱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번 결심공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은 국토부 김모 조사관은 증거인명·은닉,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강요 등 혐의로 징역 8월을 받은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여 모 상무에게 국토부 조사 보고서를 그대로 읽어 주는 등 수시로 국토부 조사 내용을 누설했다.

김 조사관은 대한항공에서 15년간 근무하다 국토부로 자리를 옮겼으며 여 상무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조사관은 여 상무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국토부 조사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누설했고 이 내용이 조 전 부사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국토부는 특별자체감사를 통해 김 조사관이 국토부 조사 시작 전날인 1월7일부터 14일까지 여 상무와 30여 차례 통화하고 10여 건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정황을 파악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 승무원은 지난 1월30일 2차 공판 당시 대한항공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중순께 김 승무원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조 전 부사장의 사과에 협조해준다면 교수직의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승무원은 “저는 사실 회사에 복귀하느냐 안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제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와 어머니는 진정성 없는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며 “조 전 부사장을 피해 4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위증 논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박 사무장은 결심공판에서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한 사람을 아무렇게나 다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조 전 부사장의 행동으로 아주 치욕적인 모멸감을 느꼈다”며 “조 전 부사장이 나를 JFK공항에서 한 번 죽였다고 생각한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박 사무장은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해 12월5일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가를 냈다. 하지만 그는 공황장애로 인한 환청 등의 이유로 한 차례 더 병가를 내고 지난달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박 사무장이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단결근으로 간주, 근태를 상부에 보고 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보복성 징계 의혹이 일자 대한항공 측은 행정적 실수였다며 즉각적인 반응을 내 놨다.

박 사무장은 병가를 마친 지난달 2일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대한항공이 퇴사 유도를 위해 인위적으로 비행스케줄을 가혹하게 편성했다는 논란에 또 다시 휩싸였다. 2월 비행스케줄에 의하면 박 사무장은 79시간을 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대한항공은 “승무원 스케줄은 전체 6000명이 넘는 승무원을 대상으로 컴퓨터에 의해 자동 편성된다”며 “2월 79시간 비행시간은 다른 팀장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전 근무시간과도 차이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국내선에 배치된 박 사무장은 사무장이 아닌 승무원 자격으로 비행업무를 소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직 강등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사무장은 보직 개념으로 비행스케줄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강등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조 전 부사장 측은 1심 판결 다음날 곧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나 죄목만 따져봤을 때 실형은 과하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조 전 부사장은 금전적으로나 위로하는 게 도리인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박 사무장과 김 승무원을 위해 공탁금 2억원을 법원에 지불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공탁금을 찾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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