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는 3분, 강자 위해 약자 버리지 말기를

 

한 도반이 얘기합니다. 쓸 데 없는 짓 그만하고 그냥 수행만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후배 뻘인데 수행력이 높기에 무시할 수가 없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나쁜(나뿐인)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안 그런 일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가 하겠지만, 내가 먼저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오래된 미래’를 보고 그런 천명에 순응하는 것이 수행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불교조계종을 포함한 우리 불교계에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젠 언론도, 정치인마저도 불교를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 동국대 사태에 동대 출신 국회의원들이 나선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나아가 “내가 먼저 간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어 길이 생긴다”는 말도 합니다. 오래된 미래는 ‘명사’가 아니라 제가 꿈꾼 비전을 조금씩 실천하면서 세상도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동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명사로 보일지라도 그 함축하는 의미가 무한히 동적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 그런 ‘오래된 미래’를 알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일임이 알려질 듯합니다. 물론 말만 그런 사람도 있어 문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잘되는 일 하나도 없다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입니다. 축하한다는 말씀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항상 지금처럼 잘된 게 아닙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습니다. 숫자로 따져보면 10개 이상 해서 겨우 한 두 개가 잘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고 하나 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겸손한 표현이기보다는 정말 운 좋게 우연하게 잘 된 일이 가끔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불운이 연속되는 때가 있어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이 씨앗이 되어 그나마 찾아올 운까지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불운(?)한 현재를 살면서 과거의 좋은 추억을 전혀 기억도 못하곤 합니다. 망각인지 건망증이나 치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머릿속을 지우개로 지우면서 살면 안 될 듯합니다. 혹시 치매라는 것도 그래서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라도 잘 된 것에 깊이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감사함이 있다면 어쩌다 또 잘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런 희망이나 기대를 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잘 안 된 나머지 역시 모두 잘된 하나를 위한 비료나 값진 경험을 위한 교훈이라고 감사하면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매일 일탈을 꿈꾼다!

여행을 자주 합니다. 동네 골목길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 성지순례나 템플스테이 등의 국내여행, 나아가 해외여행도 합니다. 언젠가부터는 마음속에서의 우주여행도 자주 합니다. 우리에게 여행은 다소 평범해 보이는 삶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항상 머무름 없이 산다는 무주상(無住相)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여행이 끝나면 바로 다시 일상이 되면서 삶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삶에서 여행과 일상을 굳이 나눌 일도 아닙니다.

여행도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상 같은 다반사(茶飯事)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분이 없이 일상에서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에서 다시 일상을 준비합니다. 삶과 죽음도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집으로 잘 돌아오기 위해서 여행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이 삶에서 죽음 다음에 찾아오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조금씩 느끼는 게 있습니다.

긴 여행 속에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때 마다 내 (마음의) 집은 조금은 더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좀 더 넓게 느끼는 듯합니다. 사실은 넓어진게 아니라 조금 더 맑고 밝아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난 그렇게 매일 일탈을 꿈꾸고 또 실천합니다.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으시렵니까?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만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혼자만 행복하다면 안타깝게도 그건 착각입니다. 어쩌면 남의 행복을 짓밟고 서 있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잘 살펴보셔야 할 듯합니다.

여기서 오블레스노블리주를 굳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우리와 얽히고설킨 우리 주변의 인연들을 돌아봐야, 아니 돌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주변의 인연들이 모여서 ‘우리’가 됩니다. 나와 너 그래서 우리가 되기에 우리 속에는 나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나만 행복해서는 안되며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의무와 책임이 있기도 합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면 어떨까요? 물론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나만 행복하자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 주변의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을 계속해서 쌓을 때 언젠가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인연들이 태그(tag)가 되어 선(善)하게 연결되는 것 역시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緣起法)의 인과응보(因果應報)인 듯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혼자만 잘살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생에서 그렇게 한 번 살아보는 것도 좋을 듯이 보이지만,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다음 생은 ‘인간의 몸’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화가는 사람들의 머리를 말이나 소나 돼지 등으로 그린 것 같습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다음 생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나요? 지금 꼭 그래야 하나요? 정말 그래서 행복한가요?

감히 사회지도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대기업이나 거창한 중소기업이 아닌 작은 구멍가게와 다름없는 자영업자를 우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노조가 밉더라도 대기업 재벌회장이나 사장 등이 아닌 노동자를 우선해 주는 정책을 만들고 그 반대편에는 서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는 그들이 주인이며 국민 뒤에는 하늘이 늘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강자들을 위해서 약자들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 길은 바로 나를 버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나’의 자화상일 따름입니다. 글 역시 ‘나’를 위한 경책의 말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나를 보는 3분(나보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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