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경제계가 주도하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해 서명했다. 뒤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특정 법안 처리와 관련해 현직 대통령이 민간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독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개혁, 무엇이 문제인가

대통령 앞장 노동분야 4대 개혁 드라이브

재계, ‘민생구하기 1천만 서명운동’으로 지원 
노동계, ‘쉬운 해고 위한 노동개악’이라며 반대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 등 핵심법안 국회통과가 지연되자 대통령이 나서서 국회처리를 압박하는 서명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경기도 판교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이에 대해 직권상정 압박을 받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은 총선 불출마를 배수진으로 치고 버티고 있다. 그 사이 노동계는 양대 지침에 반발, 무기한 총파업, 헌법소원 등으로 맞선다는 방침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노동계의 행위를 엄정 대처한다고 나서면서 노동개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글 | 유성호 기자

 

   3월 단체교섭에 직접적 영향

‘양대 지침’ 시행 두고 勞政 충돌 불가피

노사갈등 일선으로 확산…극렬한 春鬪 예고

지난달 21일 열린 여성기업계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 동참 선언식(좌측 사진)과 25일 서울 중구 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한 노조원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완화’ 등 정부의 양대 지침이 본격 시행되면서 정부와 노동계 간 갈등이 기업의 일선 현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양대 지침이 일선에 정착하기 위한 후속조치가 2월 중 일선 사업장에 시행될 경우 오는 3월부터 시작되는 노사간 단체교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 최악의 ‘춘투’(春鬪)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지난달 26일 “지난해 하반기부터 많은 사업장들이 공격적으로 양대 지침 도입을 제기한 상태”라며 “오는 3월 노사간 단체교섭이 시작되면 사측에서 선제적으로 양대 지침 적용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전국 사업장마다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완화를 골자로 한 양대 지침에 대해 노동계는 쉬운 해고가 가능한 ‘노동 개악’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해고를 쉽게 하고, 노동자에 불리한 임금체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한 만큼 사실상 “노동재앙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양대 지침 조기 정착을 위한 후속 조치에 나서긴 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신중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아직은 지침 운영에 대한 뚜렷한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데다, 사측 또한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使측, 사업장 갈등 번질까 조심스런 입장 
특히 사측의 경우 이미 입법단계에서부터 노동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노동계와 정부 간 갈등이 일선 사업장으로까지 번져 기업 운영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업 입장에선 오는 3월부터 시작되는 노사간 단체교섭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양대 지침 후폭풍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어차피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완화의 경우 사측이 개별 노동조합과 협상을 통해 현장에 정착시켜야 하는 만큼 굳이 서둘러서 손해볼 게 없다는 계산인 셈이다. 

공공기관 가이드라인 만들어질 듯 
문제는 공공기관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성과연봉제 확대 시행, 저성과자 퇴출 가이드라인 등도 조만간 추진될 전망이다. 
정부는 대기업, 주요 중소기업 등 핵심 사업장 1150곳을 지도해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도 유도할 계획이다. 
더욱이 양대 지침 시행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은 매우 거세다. 한국노총은 오는 3월까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관련한 현장 대응 방안 지침을 시달하고 대응팀을 구성했다. 노동조합 미가입 사업장을 위한 노동조건 개악신고센터도 설치했다. 
민주노총도 지난달 25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30일 서울에서 양대노총이 연대한 대규모 집회도 열었다. 
지난 1997년 이후 19년 만에 양대 노총이 연대투쟁에 나설 경우 4월 총선과 맞물려 최악의 춘투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지금이야 서로 눈치보고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단체교섭을 해야 할 시기가 되면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양대지침이 핵심 메뉴가 될 것”이라며 “따라서 이번 봄은 현 정부 들어 가장 거센 노동계의 반발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열린 수석비사관 회의에서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대정부 투쟁에 대해 엄정 대처를 지식하고 있다.

박 대통령, “대정부 투쟁 엄정 대처”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대정부 투쟁에 대해 지난달 25일 엄정 대처 방침을 밝혔다. 
자신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있는 노동계와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노동계의 반발에 밀렸다가는 노동개혁 뿐만 아니라 자칫 4대 개혁 전체의 동력 상실이 우려되고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양대 노총의 연대 투쟁 소식을 접한 박 대 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불법 집회와 선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로 촉발된 노·정 간 강대강 대치 국면을 타협없이 정면돌파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충분한 노사협의를 위해서 지난해 12월부터 끊임없이 한국노총에 공식·비공식 협의를 요청했지만 한국노총은 무기한 협의를 하자는 주장을 할 뿐 협의 자체를 계속 거부해 왔다”면서 사태 책임이 한국노총에 있다고 못박았다. 
박 대통령이 노동계를 직접 겨냥해 이처럼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힌 것은 일방적 합의 파기에 맞서 오히려 노동개혁 추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개혁의 불씨를 살려놓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지난해 중에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계획이 야당의 관련 입법 거부로 한차례 틀어진 데다 한노총의 대타협 파기 선언까지 겹치면서 자칫 개혁 드라이브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국정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올해는 총선까지 예정된 상황이어서 여기서 더 밀렸다가는 임기 내 노동개혁 완수가 불가능하다는 절박함도 묻어있다. 
박 대통령은 “2대 지침은 노사정 합의 취지에 따라 공정하고 유연한 고용관행을 정착시켜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만들고, 기업들의 정규직 채용 여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정인사 지침에 쉬운 해고는 전혀 없다”고 노동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이란?

대한상의 주도하에 대기업 속속 참여

관제·졸속 운영 시비에도 靑 지원 속 순항

대한상공회의소가 주도하고 대기업과 경영자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 모습.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한상의, 삼성전자, 롯데그룹, 포스코 임직원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경제계가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촉구를 위해 나선 천만 서명 운동이 관제시비와 졸속운영 등 지적 속에 재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38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는 지난달 13일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국민운동본부’를 발족시키고 범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 71개 상공회의소에는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전국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기업체 사업장과 은행 점포에도 서명부스가 설치돼 있다. 
대한상의(www.korcham.net)를 비롯한 경제단체 홈페이지에서도 서명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서명이 가능하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입법이 시급하다”며 “서명이 일정수준 이상 모이면 서명 명부를 인쇄해 여야 지도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명운동은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서명 명부 여야지도부에 전달 계획 
서명운동은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인 가운데 지난달 28일 기준 서명 인원이 50만명을 넘어섰다. 
전국상공회의소와 기업체, 대형마트와 시장, 광장 등 오프라인 서명운동도 크게 확산되고 있다. 대구상의, 경주상의, 용인상의 등 상당수 상공회의소는 기차역과 번화가를 중심으로 장외서명도 받았다. 
서울지역 25개 구상공회 역시 서명대를 내놓고 소상공인들과 주민들의 서명을 안내하고 있다. 
기업들의 참여열기도 거세지고 있다. 
삼성과 CJ가 이미 본사에 서명대를 설치했다. LG는 사내포털에 서명방법을 안내했다. 
현대차, SK, 포스코, 한화, 두산, 금호아시아나그룹, 삼양사, OCI 등이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역시 소공동 본점에 서명대를 설치해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법안에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노동개혁법 등이 있다. 
한편 이번 서명운동에 일부 허위 서명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운동본부측은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서명인원 집계에서도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대기업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제서명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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