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큰 죽음이 남긴 교훈

얼마 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장례식이 있었다. 평소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인색했는데 

사후에 많이 좋아진 점이 특이하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그 분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5년 동안 청와대 비서관, 예산실장, 차관, 행정조정실장 등 많은 일을 하였기 때문에 감회가 깊었다. 장례위원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는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다. 결국 한 번밖에 없는 생은 죽음으로 끝난다.(사후 세계의 유무에 대한 논의가 아님) 
그래서 생을 잘 마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라고 까지 한다. 이와 관련하여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말이 새롭다. 
“당신이 태어날 때는 당신만 울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 미소 짖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세요” 

삶은 죽음이 있기에 완성되는 인간의 위대한 목적 
YS처럼 인생을 치열하게 산 사람도 드물다. 옳다고 생각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좋았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너무 짧지 않느냐고 하니까 “열심히만 하면 5년도 길다”라는 식의 답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사망했지만 만일 예정대로 두 정상이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YS의 밀어붙이기에 상대방이 어떻게 나왔을까. 상대방이 고령임을 감안하면 큰 변고가 생겼을 수도 있고, 어쨌든 회담을 계기로 남북의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일성과 정상회담 이뤄졌으면 역사 바뀌었을 수도 
한편으로 투쟁과 쟁취의 삶을 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배려의 삶, 특히 아랫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자세가 참 푸근했다. 
사람이 화가 나면 무슨 소릴 못할까. 아래 사람에게 “나가 죽어라”는 말도 하였다지만 거기에 애정이 담기면 듣는 사람은 한편으로 친근감을 느끼면서 앞으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소리로 이해한다. 
조카나 동생 대하듯 던지는 꾸밈없는 투박한 사투리가 정겹기까지 하였으리라. 
같이 식사할 때 반찬이 맛있다 싶으면 먹던 젓가락으로 쿡쿡 집어 먹어보라고 다른 사람의 입에 넣어주었다니 이 얼마나 소박한 모습인가. 
돈에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삶은 진정 숭고하기까지 하다. 
점심 칼국수의 소박한 여운이 오래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또 오르고 난 후 수많은 유혹이 있었을 텐데 한 점 의혹 없이 처신한 그 용기와 결단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돈과 권력 중 한 가지만 가지라고 말로는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현실적으로 그걸 실천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갑의 자리에서 남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보다 가지고 온 돈을 받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만일 개인적으로 돈 문제에 조금이라도 의혹을 남겼다면 그 분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많이 달라졌으리라. 

돈에 때 묻지 않은 깨끗하고 숭고한 삶 
죽음은 많은 교훈을 남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인생학교에 입학하여 죽을 때까지 인생공부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인생 공부를 하지 않고 허송세월한다. 
비극은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한 일 보다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 많다고 한다. 
적극적인 삶 보다는 소극적인 삶에 후회가 많다는 것이리라. YS처럼 평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끝내 이루고야 마는 주도적인 삶을 산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서 그의 삶 자체가 후세 사람들에게 여러 교훈을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몇몇 약점을 앞세우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든 완벽할 수 없는 것, 강점으로 약점을 덮기 전에 약점이 있어도 인간미를 갖추고 여백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까이 해도 좋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YS, 평소 옳다고 생각하면 끝내 이뤄 
우리가 이해하는 멋진 삶이란 어떤 것인가? 평탄한 삶보다는 굴곡을 겪으면서 이를 잘 이겨낸 삶이다. 
시작보다 끝이 좋은 삶, 어려운 과정을 거쳐 멋진 결과를 성취한 삶, 선공후사(先公後私)·선의후리(先義後利)를 몸소 실천한 삶, 배려하고 보살피는 삶, 이런 것들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삶을 산 사람이 흔치 않는 것을 보면 말처럼 행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를 몸소 실천하면서 한 시대를 크게 살아 온 거목이 떠났다. 
격동의 시대에 가슴 뛰는 삶을 확실히 보여준 YS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그리고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그의 장기가 그리울 것이다.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과 남긴 발자취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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