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이혼 풍속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보는 눈 있으니 ‘쿨’하게 헤어지자”

재벌가 이혼은 늘 화제의 중심이다. 돈과 명예, 권력 등으로 얽힌 이들의 삶이 아무 걱정 없이 평탄할 것만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나 보다. 결국 이들의 삶도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모든 것이 다 채워진 듯 하지만 파경에 이르는 것을 보면 돈, 명예, 권력 보다 인격적 신뢰와 사랑이 우선이 맞는가 보다. 여성들의 수다 메뉴 1순위, 재벌가의 이혼 풍속도를 들여다본다.

 

   이혼하는 재벌가 사연도 가지가지

성격차·배우자 외도·여성 편력 등 다양

이혼은 자유지만 ‘오너리스크’로 작용하기도

최근 파경 직전까지 간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그리고 끝내 갈라 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 노 관장과 이 사장, 한쪽에선 가정을 지키려고 하고 있고 한쪽은 헤어지는 쪽을 택했다. 인간사가 이렇게 제각각이다. 살 부비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갈라 설 때는 매정해진다. 
최 회장의 경우 과거 노 관장을 원망하며 작성했던 이혼장이 밝혀지면서 혼외자, 외도 문에 엎친데 덮쳐서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최 회장은 이혼을 원하지만 노 관장은 놔주질 않고 있는 다소 ‘이상한’ 상황이다. 
이 사장과 임 고문의 경우 국내 최대 재벌 총수 딸과 평사원의 러브스토리라는 영화 같은 이야기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성격 차이 등으로 갈등을 겪다 결국 이 사장의 이혼 신청과 이후 이어진 소송 끝에 끝내 갈라섰다. 
이 사장의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큰딸인 임세령 대상 상무와 10년을 살다 조정으로 이혼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1995년 당대 최고 인기 배우 고현정 씨와 결혼했지만 8년 만에 고씨가 이혼 조정신청을 내면서 이혼이 성립됐다. 
정윤이 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는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과 1997년 결혼한 후 18년간 살다가 ‘각자도생’ 했다. 

권력과 금력 결합, 헤어질 때도 복잡 
노재헌·신정화 부부는 권력과 금력의 만남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와 고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 장녀 신정화 씨는 3년의 연애 끝에 1990년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2012년 이혼했다. 이들의 이혼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와 뒤섞여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같이 노년에도 이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최 전 회장은 장은영 전 KBS아나운서와 2010년 헤어졌다. 장 전 아나운서가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한 뒤 조정이 성립됐다. 이들은 27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순희 씨는 서강대 교수였던 김규 박사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도 1967년 대구 유지였던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 1남 3녀를 뒀지만 1979년에 이혼하고 현재 독신으로 살고 있다. 
고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다섯째 딸 경주 씨도 곽명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장남 태훈 씨와 결혼했지만 가정불화로 헤어졌다.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의 장녀 상경 씨도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박사와 결혼했다가 1967년 이혼했다. 

20년 이상 살다가 이혼하기도 
재벌가 이혼의 원인은 성격차이, 배우자 외도 등이 다수지만 근본적으로는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의 연애보다는 집안을 통한 통혼 때문에 갈라서는 이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창업세대에서는 이혼이 극히 적었다. 이유는 창업주와 ‘오월동주’의 심경으로 역경을 헤쳐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시대적 상황까지 맞물려 이혼 결심이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편 재벌가 이혼은 오너리스크와 상당한 상관관계를 갖기도 한다. 당장 주가가 빠지면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최태원 - 노소영

최 회장 이혼 요구에 노 관장 “No!”

재산분할 소송 시 오너리스크 발생 가능성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아직 법적으로 정상적인 부부사이다. 다만 한쪽에서 이혼을 요구하고 있고 한쪽에서 이를 거부하고 가정을 지킬 것을 부탁하는 상황이다. 
이들이 이혼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게 주변 정설이다. 외도로 인한 혼외자까지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최 회장은 세계일보에 보낸 편지에서 혼외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한편 부인 노 관장과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은 “성격 차이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 때문에, 저와 노소영 관장은 10년이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며 “알려진 대로 저희는 지금 오랜 시간 별거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세무조사와 검찰수사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회사 일들과, 저희 부부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법적인 끝맺음이 차일피일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미 이들의 파경은 2년 전 이혼 소장이 공개되면서 예견된 일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지난달 노 관장은 방송인 김갑수씨와 문자(SMS)를 통해 2011년 9월부터 별거가 시작됐음을 밝히며 세간의 ‘별거기간 10년’ 루머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2013년 최 회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혼소장에서 노 관장의 ‘경솔한 행동’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며 결혼 파탄의 책임이 노 관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소장에서 “노 관장의 경솔한 행동으로 2011년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이후 경솔한 행동을 반복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며 “노 관장의 명예와 자존심을 고려해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로 인해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동생도 구속돼 회사 전체가 큰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 관장은 경솔한 행동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거짓말을 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며 “2009년 말부터 별거를 해왔고 오랜기간 사실상 파탄상태인 혼인관계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결혼 초부터 성장배경의 차이, 성격과 문화, 종교 차이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어 왔고 결혼 과정과 이후 세간의 이목과 관심, 그로 인한 부담감 등으로 점점 심적 여유를 잃어갔다”며 “논리적이며 자율적인 성격인 저와 달리 노 관장은 성격이 강하고 예민한 의사표현 방식을 갖고 있어 매번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반면 노 관장은 한 지인에게 “아이들 상실감이 크다. 남편이 빨리 제 정신을 차리고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심중을 털어 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쉽게 이혼해 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들 부부를 잘 아는 지인의 말을 빌리면 최 회장 횡령사건이 터졌을 때 부부 사이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당시 노관장이 사실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자존심을 상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이것이 이른바 노 관장의 ‘경솔한 행동’이란 것이 지인들의 해석이다.

 

   이부진 - 임우재

이 사장 다부지게 소송으로 이혼 결행

재판서 이겨 지난 1월 임 고문과 결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이 결국 남남이 됐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가사2단독 재판부는 지난 1월 14일 이 사장이 임 고문을 상대로 낸 이혼소송 선고 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앞서 이 사장은 지난 2014년 10월 이혼 소송과 함께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임 고문을 상대로 이혼 조정 및 친권자 지정 신청을 냄으로써 세간에 불화를 드러냈다. 
당시 이 사장의 이혼 소송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갑작스러운 일로 받아드려졌다.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이 사장 부부의 관계가 악화돼 있었다고 본 사람이 드물었다는 의미다. 
이혼 절차를 밟은 1년여의 기간 중 6개월간 가사조사 절차가 진행됐지만 이혼이 성립된 것을 보면 소를 제기한 이 사장의 입장이 단호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가사조사는 이혼을 원하는 부부 당사자의 결혼생활, 파탄사유 등을 가사조사관이 청문하는 과정으로 합의 여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이 사장은 가정을 지키겠다는 임 고문과 달리 단호하게 혼인 관계를 정리했다. 
임 고문이 혼인 관계를 지속하고 싶었던 이유는 슬하에 아들 임모 군 때문이다. 
지난 8월 가사조사 당시 임 고문의 법률 대리인 조대진 변호사는 “가장 큰 쟁점은 양육권이지, 재산 분할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아버지가 아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친권, 양육권은 모두 이 사장에게로 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의 면접교섭권이 인정됐다. 이 부분에서도 이 사장의 ‘다부진’ 의중이 느껴진다. 
임 고문의 유책사유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친권, 양육권을 모두 이 사장이 가져간 것에 대해 법조계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 과거 이 사장과 임 부사장 간 이혼 조정 신청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에선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두 사람이 협의 이혼을 건너뛰고 소송을 택한 것은 제도적 편의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사장 측에서도 “두 사람은 이미 중요한 부분에서 합의를 마쳤고 원만하게 이혼을 마무리하기 위해 조정을 신청했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국내 최대 재벌가 삼성의 장녀와 평사원간의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도 막을 내리게 됐다. 
두 사람은 1995년 사회봉사활동에서 처음 만나면서 사랑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연세대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복지재단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주말마다 서울 상일동에 있는 지체부자유아 보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이 사장은 이곳에서 임 부사장을 만났다. 
임 고문은 로얄 패밀리가 된 덕에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 해왔다. 
1995년 삼성물산에 입사, 2005년 삼성전기 기획팀 상무보, 2009년 전무, 2011년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현재는 고문으로 밀려나 퇴사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지인에 따르면 임 고문은 결혼생활 당시에도 “집안에서 서열이 가장 낮다”고 자조 섞인 표현을 하는 등 로얄 패밀리에 섞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가 통혼 습성

딸 시집은 재력가·아들 장가는 권력가에

끼리끼리 혼교로 정·관·계 한 다리 건너면 사돈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회 명예회장은 철저하게 재벌가 통혼습성을 따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남 김승연 화화그룹 회장은 서정화 국회의원 딸 서정님 씨와, 차남 김호연 전 국회의원(전 빙그레 회장)은 김신 전 교통부장관의 딸 김미 씨와, 딸 김영혜 씨는 이후락 정보부장 아들인 이동훈 씨와 혼인을 시켰다. 사진은 김호연 전 의원 가족.

재벌가의 혼맥은 재벌가나 권력가 집안과 가장 많이 연결돼 있다. 이는 재벌가의 일반적인 통혼 습성이기 때문이다. 
재벌들이 같은 재력가나 권력가 집안과의 통혼에 심혈을 쏟는 이유는 △결혼을 통한 보완적 욕구 충족 △사회지위 보전 △사회적 지위 상승 기회로 보는 관점 때문이다. 
재벌과 재벌이 통혼하는 것을 내혼(內婚)이라고 한다면 권력과 통혼하는 것을 외혼(外婚)이라고 한다. 
내혼은 재벌세력의 외부로의 분산과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동시에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 공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재벌가 2, 3세 들이 연애결혼을 하면서 부터다. 
유학 중에 만난 최태원-노소영 커플, 봉사활동 현장서 호감을 갖게 된 이부진-임우재 커플 등이 비근한 예다. 
재벌가의 통혼 습성을 찬찬히 뜯어보면 재미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딸을 시집보낼 때는 재력, 아들을 장가보낼 때는 권력 쪽이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재벌 혼맥을 연구한 오갑환 씨는 이같은 이유를 “재벌이 아들에게는 쉽사리 경제적 지위를 물려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부의 소유자일 필요는 없으나, 딸의 경우 재산을 물려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층계급의 지위를 확고히 굳혀놓은 집에 출가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정․관․계 집안의 통혼에 따라 이들이 한 다리 건너면 사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신영 전 총리 집안을 예로 들자. 
외무장관에 국가안전기획부장까지 지냈던 노 전 총리는 삼성가와 사돈간인 홍진기가와 현대 정주영가, 고려원양 이학수가에 아들을 장가보내 재벌, 준재벌 딸 3명을 며느리로 맞았다. 
딸은 풍산그룹 류찬우가에 시집을 보내 사위를 맞았다. 
류찬우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돈이니 노 전 총리와 건넌 사돈이 된다. 노 전 총리의 아들사돈인 정주영 회장은 전 외무장관 김동조가, 부국석면 김진하가, 극동석유 장홍선가, 신양해운 현명원가와 사돈간이고 이들 사돈들은 또 다른 많은 정․관․계 집안들과 혼교하고 있다. 

재벌가 男 여성 연예인 선호 
총리, 부총리 출신으로 재벌가의 아들 사돈이 된 사람은 노 전 총리를 비롯해 김종필 전 국무총리, 신병현 씨 등이다. 대통령, 총리, 부총리는 수가 극히 한정돼 있다 보니 재벌들이 아들 장인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집중 공략하는 것이 장․차관들이었다. 
90년대 초반에 서울경제 산업부 기자들이 발간한 ‘재벌과 가벌’에 따르면 100대 재벌의 비기업인 아들사돈 가운데 장․차관 출신이 24명으로 전체 32%나 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재력에 따라 권력이 세고 적음이 비례한다는 점이다. 이는 장․차관의 수도 한정돼 있고 재력 가진 사람들이 권력 가진 사람들 보다 많기 때문에 나타나 현상이다. 
장․차관을 아들사돈으로 삼은 대표적 재벌로는 삼성가 이병철, 현대가 정주영, 쌍용가 김성곤, 한진가 조중훈 등이다. 
딸을 통해 재벌 사돈이 된 장․차관은 김태동 전 체신, 김동조․김용식 전 외무, 홍진기․서정화 전 내무, 송인상․천병규․이정환 전 재무 등이 있다. 

 

   각종 파경 사례

재력·권력도 막을 수 없었던 이혼

이혼 많은 범삼성가 숱한 뒷이야기 남겨

 

재벌+재벌 이혼 사례 
삼성가 이재용·대상가 임세령 

그간 파경을 맞은 재벌가 인사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이미 삼성·신세계 등 범삼성가의 이혼사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최대 부자 가문이란 점에서 이들의 혼사와 이혼사는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 역시 숱한 화제를 뿌렸다. 
임 상무의 모친은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장녀다. 
이들 양가는 뼛속까지 재벌인 셈이다. 이들은 지난 1998년 11월 결혼해서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가 11년 만인 2009년 헤어졌다. 
두 아이에 대한 양육권은 번갈아 가면서 갖기로 합의했다. 자녀들이 20세가 되면 두 자녀의 친권은 이 부회장이 갖게 된다. 
이 부회장과 임 상무는 1997년 양가 어머니의 소개로 만났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전무, 임 상무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중매였지만 이 부회장은 미국 유학시절 가까이 지낸 유학생들에게 약혼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등 임 상무에게 쏟은 정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1998년 1월 두 사람은 약혼을 발표하고 5개월 뒤인 1998년 6월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미풍’과 ‘미원’으로 조미료 전쟁을 벌였던 영남의 대표기업 삼성그룹과 호남의 대표 기업 대상그룹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에서 재계는 물론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2009년 초 임 상무가 이 부회장에 대해 10억원의 위자료와 양육권, 재산분할 등을 요구하며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주변 반응은 오래전부터 불화설이 나왔던 터라 ‘올 것이 왔구나’ 정도였다. 
이 들은 친권자는 이 부회장으로 지정하고 양육 및 양육비, 위자료, 재산분할에 관해서는 별도 합의키로 하는 등 일주일 만에 합의 이혼하기로 결정, 쿨하게 마무리했다. 

 

두산가 박서원·범 LG가 구원희 

두산가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두산 전무)과 LS가 구원희 씨는 지난 2005년 결혼했다. 두산과 범LG가가 사돈을 맺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 창업주인 고 박두병 두산 명예회장의 5남이다. 구원희 씨 부친인 구자철 한성그룹 회장은 LG에서 계열분리된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한성그룹은 LS그룹의 계열사다. 이 혼사는 박용만 회장과 구자철 회장이 경기고 동기동창인 40년 지기 친구란 점에서 재벌가 통혼으로 읽힌다. 
구 씨가 서울 장충동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들어간 2009년부터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다. 
박 씨는 별거 이후 구 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박 씨 측은 구 씨가 사실상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친정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 씨 측은 이혼에 반대했으나 박 씨 측이 소송을 강행했다고 반박했다. 이때부터 법원의 기각, 조정, 합의 실패 등 기나긴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이들의 이혼 소송은 2011년에 마무리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또한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 재벌가끼리 통혼 기록을 세웠다. 이들은 1남 3녀를 뒀지만 이혼했다. 

 

재벌+권력 이혼 사례 
노태우 대통령가와 신동방그룹가 

신동방그룹의 고 신명수 회장의 장녀 신정화 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외아들인 노재헌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들은 1990년 6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대학 3학년 때 교내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3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해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고 전해진다. 
노 변호사는 1991년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 비서로 활동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을 보였으나 1995년 아버지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자 꿈을 접고 신 씨와 미국과 홍콩 등에서 외국 생활을 했다. 
두 사람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11년 말 이혼소송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터다. 이혼 소송은 신 씨가 먼저 제기했다. 2011년 3월 신 씨는 홍콩 법원에 노 씨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 분할, 양육권 청구 소송을 냈다. 결혼 23년 만이다. 결국 두 사람은 2012년 7월 헤어졌다. 
신 씨는 당시 소장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다. 10월 노 변호사 역시 신 씨를 상대로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이혼과 세 자녀 양육권, 위자료 1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노 변호사의 한국에서의 이혼 소송 청구는 홍콩 재산 중 ‘노태우 비자금’이 섞여 있기 때문이란 증언도 나온다. 홍콩은 해외 재산 추적이 한국보다 쉽기 때문에 노 씨가 비자금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국에서 뒤늦게 맞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홍콩법원은 2012년 7월 “두 사람은 이혼하고 세 자녀 친권은 공동으로 갖되 양육권은 신 씨가 갖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혼으로 인해 노 변호사는 수백억원 대의 비자금 소유 의혹을 받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은 두 사람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재산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노 씨는 한 해 영업이익만 최소 수십억원을 남기는 모바일 게임 등을 개발하는 한 업체에서 두 자녀와 함께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비상장이지만 주식 가치는 최소 200억원대로 추정됐다.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바하마 등에 노 변호사 명의의 투자금 200억원대 회사가 여러곳 있는 것도 드러났다. 

전두환 대통령가와 박태준가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네 딸 중 두 딸이 이혼했다.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나왔다가 낙마한 고승덕 변호사가 박태준 회장의 둘째 사위였다. 네째 사위였던 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다. 
전 씨는 세 번 결혼 했다. 첫 번째는 1988년 박 회장의 막내딸 박경아 씨였다. 전 씨는 박 씨와 1990년 이혼하고 1992년 공무원 출신 최대성 씨의 딸 최정애 씨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최 씨와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은 전 씨는 2007년 또 다시 이혼하고 곧바로 탤런트 박상아 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권력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재벌+연예인 이혼 사례 
범 삼성가 정용진·고현정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은 당시 드라마 ‘모래시계’로 물오른 연기를 보여줬던 고현정과 1995년 5월 결혼했다. 
그러다 결혼 8년 만인 2003년에 파국을 맞았다. 
고현정이 이혼조정 신청을 냈고, 정 부회장이 고현정에게 위자료로 15억원을 주면서 양육권을 갖기로 했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다. 
재벌과 연예인의 만남이란 점에서 수많은 화제를 몰고 온 이들의 결합은 그러나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설, 이혼설이 2~3년마다 나돌았고 2억원 대 귀금속과 현금 도난 사건도 언론을 장식했다. 
이들 부부의 이혼 조정결정은 고 씨가 조정신청을 제출한 지 2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성립됐을 정도로 법원과 당사자들 간에 조정이 급속히 이뤄졌다. 
당시 법원 관계자는 “당사자가 이미 양육권·재산분할·위자료 등 이혼에 관한 모든 합의를 끝낸 상태에서 조정신청을 해 당일 바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과 고 씨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정 부회장은 2007년 한 음악모임에서 만난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2011년 재혼했다. 
한 씨는 고 한상범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장녀다. 당시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두고 ‘한국판 로열웨딩’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한 씨는 결혼 2년 만인 지난해 1남 1녀 이란성 쌍둥이를 출산했다. 정 부회장은 전처인 고 씨와 사이의 1남 1녀를 포함해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세 여인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현 공산학원 이사장)이 전 KBS 아나운서인 장은영 씨와 2010년 이혼함으로써 ‘세 번의 결혼 세 번의 이혼’ 란 기록을 세웠다. 이혼의 결정적 원인은 자녀 문제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 전 회장은 전처와의 사이에 4남1녀를 두고 있지만 장 씨와는 자녀가 없다. 당시 장 씨는 별도 재산분할 청구를 하지 않아 소송 전에 재산문제도 정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 1999년 27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최 전 회장은 배우 김혜정 씨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1976년에는 가요 ‘커피 한잔’으로 유명한 펄시스터즈의 멤버였던 배인순 씨를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가 결별한 전력이 있다. 
배 씨는 최 전 회장과의 20년간의 결혼생활을 담은 ‘30년만에 부르는 커피한잔’이란 책을 통해 “40대 중반부터는 자신과 전혀 섹스 관계조차 해주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밝혀 화제를 모았다. 
배 씨는 책을 통해 최 전 회장의 여성 편력에 대해 털어놨다. 여성 연예인을 집까지 끌어들여 외도를 했다는 것. 특히 그가 불러들였다는 연예인들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연예인들이라는 것이다. 
최 전 회장 측은 당시 책 판매를 중지시켜 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2004년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출판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이 사실 관계를 대신 증명해 준 셈이다. 
최 전 회장은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아이스터고등학교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3남 1녀 중 막내로 미스코리아 진 출신 한성주 씨와 결혼했다가 10개월 만에 이혼했다. 
한 씨의 아버지는 한효섭으로 1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어머니 윤정빈씨는 부산세화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재벌 통혼을 벗어난 사례

파경 맞았지만 축복 받은 순애보

정윤이․이미경 등 평사원과 결혼해

정윤이 고문·신성재 전 사장 
정윤이 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는 정몽구 현대차그룹의 셋째 딸이다. 그녀는 신용인 삼우그룹 회장의 아들인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과 1997년 화촉을 밝혔다. 
그리고 2014년 3월 18년 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신 전 사장은 1995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1997년 정 전무와 결혼했고 1998년 현대강관(현 현대하이스코)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3년 1월 정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전형적인 로얄 패밀리의 에스컬레이터 승진이다. 
급기야 2년 뒤에는 10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혼과 함께 신 전 사장은 현대하이스코 사장직에서 물러나고 현대하이스코 주식은 물론 현대차 주식도 전량 매도해 현대가와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이미경 부회장·김석기 전 사장 
평사원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재벌가 딸은 또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도 당시 삼성의 평사원이었던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사장과 결혼했다. 
이후 김석기 전 사장은 연극배우 윤석화 씨와 재혼했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페이퍼컴퍼니 설립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최기원 이사장·김준일 씨 
고 최종현 SK그룹 명예회장의 딸이자 최태원 SK 회장 여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은 당시 SK그룹 계열사였던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준일씨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2005년 이혼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당시 선경마그테틱의 기획부장으로 일했던 최태원 회장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이사장은 오빠인 최재원 SK 부회장을 채서영 교수에게 소개해 백년가약을 맺게했다. 채 교수와 최 이사장은 친구사이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장녀 구지연 씨도 1989년 평사원과 결혼했지만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구 씨는 5년이 흐른 1995년 선두훈 코렌텍 대표의 친형인 선석훈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국 재벌 통혼 습성을 따라 간 것이다. 선두훈 대표의 장인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며 그의 배우자는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다 한편 이들 로열 패밀리들의 사건을 다뤄 본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로열패밀리 사건을 해 봤는데 로열패밀리의 특권의식. 즉 문화적인 차이, 자라면서 성장환경 그런 부분들이 격차가 생기면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족간에 식사를 모여서 하는데 특정나라의 언어로만 하는 데 그 언어를 모르는 며느리나 사위는 굉장히 소외감을 느끼고 과연 내가 여기 로열패밀리의 일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결국 뛰쳐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혼의 역사

불과 10년 전 현재 이혼제도 정립

과거 남편이 아내를 집에서 쫓아내는 방식

고대 국가가 성립되기 전에도 이혼의 형태는 존재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아내를 가정에서 추방하는 형태로 존재했다. 
고대 국가 성립 이후 성문법이 등장하면서 이혼과 관련된 조항과 사유가 문서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성문법은 존재했지만 서양에서는 19세기 산업 혁명 이전까지, 동양에서는 20세기 초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법적 절차 없이 관습법이나 풍속에 근거해 남편이 아내를 가정에서 추방하는 형태로 이혼이 진행됐다. 
근대 사법체계가 성립된 이후에야 법적 절차에 의거해 이혼이 이루어졌고 여성의 인권도 보호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이혼의 역사는 여성의 권리와 상당한 궤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898년 고종의 광무개혁 이후 근대적 형태의 이혼 제도가 도입됐다. 
일제강점기부터 1978년까지 협의 이혼은 이혼신고만으로 성립했다. 
그러나 부부 중 한쪽 특히, 남편의 강박이나 사기에 의한 이혼신고를 막기 위해 1979년 1월 1일부터는 당사자 양쪽이 가정법원 판사의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아야만 이혼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부가 양육 및 친권행사자, 면접교섭권 등 미성년자인 자녀에 관한 중요한 법률적인 문제를 정하지 않은 채 혼인관계만 해소해 자녀들의 복리를 등한시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2007년 민법을 개정, 2008년 6월 22일부터 이혼숙려제도가 시행됐다. 

자녀 복리 위해 이혼숙려제 도입 
이혼숙려제도는 부부에게 미성년자인 자녀(임신 중인 자녀 포함)가 있는 경우에는 3개월, 그 밖의 경우에는 1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나야만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또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확인기일 전에 그 자녀의 양육 및 친권행사자가 정해져야만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자녀의 양육 및 친권행사자, 면접교섭권을 합의하거나 미성년자인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재판상 이혼의 조정제도를 이용하여 이혼숙려기간을 거치지 않고 이혼할 수 있다. 
광무개혁 이후 도입된 근대적 이혼 소송에서는 보통 남자가 여자에게 위자료를 주는 것이 관례화 됐다. 
1931년 한국의 여류 계몽운동가 박인덕의 이혼 소송에서 박인덕은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기도 한 특별한 케이스도 있다. 광복 이후에도 여성이 잘못하지 않는 이상 보통 남편이 여성에게 위자료를 주는 것이 한국 사회에 관행처럼 여겨졌다. 
현재 사실상 로마 가톨릭교회의 본부인 바티칸 시국을 제외하고 필리핀만이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이다. 필리핀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나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뿐이다. 
이혼을 하면 혼인으로 부부간에 생긴 신분상·재산상의 모든 권리 의무가 소멸된다. 
즉 부부 사이 정조의무, 동거·부양·협조의 의무, 부부재산 관계와 함께 배우자 혈족과의 인척관계도 소멸한다. 
그래서 이혼을 ‘등 돌리면 남’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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