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 노사정 합의파기 비난만 받아야 하나?

한국노총이 지난 1월 19일 지난해 9월 15일에 맺은 노사정 합의가 무효가 됐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합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1998년 노사정 합의 뒤 
17년 만의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사정 합의는 넉 달 만에 백지화가 됐고,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해온 노동개혁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부는 한국노총의 노사정 합의 파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을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노총이 국민의 여망을 배반하는 것이며 조직이기주의를 우선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 그동안 추진해온 양대 지침을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함으로 인하여 노사정위원회는 그 조직적 성격에서 불구자 내지 식물이 되어 버렸다. 물론 언젠가는 한국노총이 복귀를 선언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 당장 노사정위원회를 폐기할 것은 아니다. 
노동계가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아니하면 산업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기구에 불참을 선언했다가 정부의 설득이나 상황변화에 따라 복귀하는 전례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대화기구 불참 선언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노사관계의 주축인 노동계가 산업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기구에 불참한다는 그 자체는 비난받을 만하다. 

대화기구 불참 자체는 비난 받아 마땅 
대화의 장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은 노사정을 불문하고 각 주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해온 것이고 특히 상대적 약자라고 하면서 노동계가 더 나서서 주장해온 것인데, 대화의 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대화라는 성격 자체에서 의당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자기만 주의’라고 한다. ‘남의 말을 들어 보려하지 않는 한국인’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자기의 주장이나 자기의 편익을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생각하기 이전에 강하게 집착한다. 
이와 정반대의 의식구조가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는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의 장을 열면 반드시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단정하고 승패를 극명하게 비교하여 평가하는 조급증을 적잖이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노사정 합의’ 내지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행태로 표현되고 그 성과에 대해 사회적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화의 장이 원만하게 운영되지 못한 경우를 자주 봐왔다. 
이러한 우리의 의식구조적 특성에 보면 그리고 이번 ‘노사정 합의’의 내용을 보면 합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음에도 ‘합의’를 선언한 것처럼 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과욕을 부린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측면이 강하다. 
노사정은 각자의 역할이 다르고 특히 상대적 입장이고 주장이 전면적으로 다를 수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합의’라는 미명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모한 것이고 ‘한국노총의 파기선언 내지 노사정위 불참선언’이 애초부터 예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한국노총이 정부와 여당에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한 것은 이러한 대화체제의 불만을 너무 정치적 문제로 몰고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와 함께 향후 노사관계에서 비난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양대지침 강행 과연 타당한가? 
한국노총의 노사정합의 파탄 선언에 맞서 정부가 1월 22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서 그동안 추진해온 저성과자 해고절차와 취업규칙 변경요건을 완화하는 2개 행정지침을 확정, 발표했다. 
대통령의 강한 주문과 더 늦으면 곧 다가올 선거 등 정치일정을 감안해서 신속히 추진하지 않으면 노동개혁이 좌초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동안 이 ‘해고절차와 취업규칙 변경요건완화’를 정부가 지침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많이 제기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함께 노사정의 또 다른 한 축인 경영계는 “과연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에서 노사관계의 주체로서 마땅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근로자의 채용과 관리, 해고’ 등은 지극히 사적인 관계의 문제라서 당사자인 노사가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노동계보다 경영자가 주관해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 중에서 경영계는 뒷짐을 지고 있고 정부가 이것을 주관해서 밀어붙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보다도 경영자는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확정 발표한 양대 지침을 ‘미흡하지만 받아들이겠다’고 표현한 것은 무슨 상급자의 지시를 수용하는 듯 오인받기 십상이다. 
더구나 정부가 이 ‘저성과자 해고문제와 취업규칙 변경’ 두가지 문제를 지침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말 과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침은 법률이 아니다. 법률이 아닌 것은 국민의 권리의무를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만일 지침을 기업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가.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해고문제는 물론 취업규칙은 노사간의 단체협약의 하위규범이 되어 노조와 합의하지 못하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지침이 노사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 되고 법적 효력문제의 논란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노총이 정부의 양대 지침에 대해 법원에 무효를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냄과 동시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낼 방침이라는 선언이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 주장이다. 

노사관계 질서는 판례와 관행으로 해결해야 
정부가 만든 통상임금 지침을 기업이 그대로 따르다가 대법원에서 뒤집혀 산업현장이 큰 혼란을 겪은 경험이 불과 2년이다. 이번 지침이 판례를 많이 참조하고 전문가들의 많은 토론을 바탕으로 작성했다고 하지만 통상임금 사례와 같은 꼴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근로자에게 가장 예민한 문제가 바로 정부가 지침으로 밀어붙이는 해고문제․임금문제이다. 어쩌면 정부가 지침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자체가 정부로서도 걱정거리를 안게 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노사관계의 질서와 문제해결은 누적된 판례와 산업사회의 관행에 의해 해결해 나가는 선진국의 경험을 우리는 깊이 참고해야 할 것이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감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변화를 조급하게 추구하는 것은 분쟁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손실이 엄청나게 크다는 역사적 경험을 상기하자. 
지금 우리의 경제사회적 현실이 상당이 위급하다고 판단해서 정부가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선 것은 옳다고 보지만, 노사정합의의 성격으로 보아 사적관계부분을 정부가 아주 구체적 지침으로 해결하려 나설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영계가 자체적 지침을 만들어 노사합의를 시도하고 정부는 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합의시스템을 작동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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